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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보이지 아니하실지라도 = 스 8장 15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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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15()

815~23

보이지 아니하실지라도

 

8: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8: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8: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8: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8: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8: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도입)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과 그곳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이른바 새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 회개를 일으킨 이들에게 예루살렘으로라는 회복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B.C 538년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메대와 바사를 통일하고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 왕을 움직입니다. 드디어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바사에서 포로로 정착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1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약 8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을 때입니다. B.C. 458년입니다. 계명의 말씀과 율례에 능통한 학사요, 제사장인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2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가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합니다. 이때 신앙으로 하나의 모습이 되도록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걸음이 단순한 귀향의 걸음이 아니라 신앙을 담아내고, 신앙을 일으키는 걸음이 되도록 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나, 에스라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때나,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에스라는 여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5~17)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에스라를 지도자로 하여 본토로 돌아갈 뜻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귀국을 허락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은.금을 함께 주어 보내도록 합니다. 에스라가 귀국 희망자들을 모읍니다. 귀국을 희망하는 무리 가운데 남자들의 수를 세어보니 1,496명이었습니다. 그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온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읍니다. 그곳에서 삼일을 머물게 합니다. 거기서 사흘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핍니다. 에스라는 속히 귀국을 희망하는 무리를 향해 엉뚱한 일을 벌입니다. 첫 번째는 사흘 동안장막에 머물게 합니다. 두 번째는 그들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 의하면 살피다라는 와아비나 어떠한 것을 식별하기 위하여’, ‘자세히 그리고 계속해서 살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모인 무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지파의 후손인지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한 내용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에스라가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15)

성전 중심의 언약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단순히 고향 앞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행렬을 조사해 보니 제사장들은 있었으나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인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라는 무리 가운데 있던 족장들을 급히 호출합니다. 그리고 명철한 자를 부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는 가시뱌지방으로 그들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레위인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성전 봉사를 감당하던 레위인을 도왔던 느디님 사람들도 만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도록 합니다. 이때 사용했던 설득 무기는 명령이나 공갈 협박, 꿀 발린 감원이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는 예루살렘으로 가자!”였습니다. 해답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있습니다. 우리 또한 여기에 대해 동일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도록 만듭니다. 누가 그렇게 할까요?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에스라는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갔습니다. 우리도 에스라처럼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일에 힘쓰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18~20)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온전함이 공동체 가운데 바르게 세워지도록 신앙 회복 운동에 쓰임 받는 하나님이 택한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귀환을 통하여 성전 중심 신앙의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던 에스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레위인의 불참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납니다.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의지하였던 신앙의 무기는 빛을 발합니다. 성령의 역사함을 통하여 그 효력을 나타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18, 19)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잇도의 친척 가운데 세레뱌가 그의 아들들과 형제 ‘18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향할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해 나아옵니다. 그리고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 자신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자들이었음을 잊지 않고 나아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레위인 가운데 하사뱌므라리자손 중에서 ‘20이 그리고 레위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였던 느디딤 사람들이 나아옵니다. 느디딤 사람들은 다윗시대 때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도와 막노동을 했던 자들로서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으로는 비록 이스라엘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영적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220이나 자원하여 모여듭니다. 공동체를 향한 신앙의 회복 운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에스라와 같은 모습이 되었을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변화됩니다. 바울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계를 복음으로 일깨우게 하셨던 것처럼,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하여 미국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전혀 유명하지도 않은 영국의 한 시골마을, 웨일즈 출신의 목사의 아들이었던 한 청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를 통하여 조선을 복음으로 뒤덮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 중 누군가를 이와 같이 사용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21~23)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가지도록 공동체의 신앙을 지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가 무리를 강가에 모으고, ‘사흘 동안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게 했던 두 번째 큰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앙을 공동체로 하여금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하와 강가는 넓은 평야 지대로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이 살았던 납불 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무리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던 바사로부터 직경으로 약 800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계절이 4월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광야를 바로 질러가는 이 코스는 불가능한 코스였습니다. 그러니 다소 길은 멀어도 안전한 북쪽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길 또한 만만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북쪽 길은 유프라테스 강기슭을 통하여 서쪽인 다메섹을 지나, 팔레스틴을 향하는 코스로써,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약 1,400 Km에 달하는 먼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장정들이 4개월 정도를 부지런히 걸어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문제는 이 길 또한 평탄한 길이 아닌 사막 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낮에는 불볕이 그리고 밤에는 추위와 치명적인 동물들로부터 노출되는 그 길은 사막의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는 강도와 도적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에스라는 두 가지의 결단을 내립니다. 첫 번째는 와에크라’, ‘선포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간구하는 것입니다. ‘선포는 공동체를 향한 금식의 촉구였으며, ‘간구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금식의 선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그리고 간구함은 하나님 외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분은 없다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사막 길을 내디뎠던 언약의 공동체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23)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가지도록 공동체의 신앙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에스라처럼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공동체를 묶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영적 회복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실지라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 그에게는 좌절과 무너짐이 아니라 회복과 하나님의 일으킴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힘 있게 달려가는 일꾼이,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에스라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동일하시며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에스라의 말씀을 묵상하며 에스라가 이스라엘을 하나로 세우은 신앙을 보면서
오늘의 나의 신앙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공동체를 위하여 어떠한 신앙의 자세로 나아가야할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로 귀환할자들을 돌아보며 제사장은 있으나
성전에 봉사할 레위인들이 단 한명도 없음을 보고
레위인들이 동참하도록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에스라를 바라봅니다
이처럼 신앙의 공동체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영적 회복 운동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이 나의신앙이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가는 사명에 쓰임받는 성도가 되어
공동체의 한 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작은 점 하나가 큰 원을 이루듯이 보잘 것없는 나의 작은 모습일지라도
공동체의 작은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가꾸어 가는데 쓰임받는 성도가 되어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힘있게 달려가는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날이기를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흔히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결과를 믿고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냐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만 믿는 우상숭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의 모습이 저에게 남아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신앙으로 내가 먼저 세워지고, 공동체를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공동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쓰고 애쓰며 신앙으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과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profile_image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제1차 포로귀한으로 부터 약8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B.C458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에 임하고 신앙으로 세워지는하나님의 나라의 일꾼과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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