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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본이 되는 성도의 신앙 = 스 3장 8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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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11()

38~13

본이 되는 성도의 신앙

 

3:8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3: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3: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3: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3: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3: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도입)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에 따른 불의한 자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복된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고, 또한 자랑삼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신앙은 자신들이 그렇게 자랑삼았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세상과 짝하는 불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B.C. 722, 북이스라엘의 멸망이었으며, B.C. 586, 유다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신앙 회복의 길을 걷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신앙을 바르게 만들어가는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을 약속하셨던 남은 자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 포로로부터 건져내어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해방됩니다. B.C. 537,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첫 번째 포로로부터 귀환한 남은 자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회복을 위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합니다. B.C. 458, 두 번째 포로 귀환을 이끌었던 에스라는 첫 번째 귀환자들에 의해 세워진 성전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포로 귀환자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 과정을 통해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두 번째 포로 귀환자인 남은 자들로 하여금 후손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인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본이 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8~9) 하나님의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더 높이는 일에 솔선수범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하는 자세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에 따르면 1차 포로 귀환자들은 무너진 성전의 재건을 위해 약 7개월의 준비기간을 가집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하면서, 건축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건기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당시 ‘2은 팔레스틴 지역의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왕상 6:1)에 의하면 ‘2은 솔로몬에 의해 세워졌던 예루살렘의 성전공사가 시작된 달이기도 했습니다. 스룹바벨은 성전의 재건을 위해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할 때 모습을 두 가지 재현합니다. 첫 번째는 성전 건축의 시작을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2로 맞추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상 23:24)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회막에서 수종 드는 레위인의 연령을 ‘20로 맞춘 것과 동일하게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1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은 성전 재건을 통해 귀환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더 높이고자 했던 겁니다.

스룹바벨의 조치에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성전 재건을 감독하는 레위인들은 과거 조상들의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것을 회상합니다. 불신앙이라는 타락의 길을 걸으면서 결국은 성전이 파괴당하고, 나라가 멸망 당한 과거를 회상합니다. 레위인들이 감독했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고, 지위를 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 함께 점검됩니다. 신앙은 심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과거 조상들의 불신앙과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야기되어졌던 멸망이라는 썩은 열매를 회개의 신앙을 통해 거둬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회복을 위해 솔선수범하며 맡겨진 직무에 대해 충성으로 그 모습을 대신합니다. (벧전 5:3)은 말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하나님의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더 높이는 일에 솔선수범을 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하는 자의 자세는 다음 세대의 신앙의 본의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만들어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0~11) 힘들고 영적으로 지쳐버린 세상의 영혼들을 일깨우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일에 헌신하며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레위인들의 감독에 의해 성전을 세울 기초 터가 만들어질 때였습니다. 그때 레위인이었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팔을 들고나옵니다. 그리고 레위자손이었던 아삽 자손은 손에 제금을 들고 다윗왕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대상 6:39)에 의하면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때 찬송 업무를 맡았던 악사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스룹바벨은 이것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바라보며 희망과 용기를 되찾도록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윗을 본받는 신앙인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규례대로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이때 백성들에게서 나타났던 반응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동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찬양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화답합니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였음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함께 찬송합니다. 희망과 용기가 함께 실려 있는 신앙이 살아나는 찬양이었습니다. ‘남은 자들의 찬송은 눈물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송이었습니다. 찬송은 영적으로 힘들어하고, 지쳐 있는 영혼을 일깨우는 생명수와 같습니다. (삼하 16:23)을 보면, 찬양은 악령이 들었던 사울 왕의 마음을 치료합니다. 그런가 하면 (35:10)에 따르면 찬양은 고난을 이겨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힘든 세상 가운데 놓여 있는 영혼들은 이미 영적으로 지쳐있습니다. 그 영혼들을 일깨우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다윗의 규례가 담긴 찬송의 사람이 됩시다. 이 일에 헌신했던 아삽처럼 헌신하는 찬양의 삶을 만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2~13) 눈에 보이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본이 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스룹바벨 당시 성전의 기초 터가 완성이 되었을 때 두 성격의 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하나는 기쁨의 찬송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통곡의 외침이었습니다. 통곡은 포로로부터 귀환한 사람들의 외침으로, 어렸을 때 봤던 첫 번째 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의 대성통곡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통곡을 앞세운 노인들의 슬픔에는 자신들의 과거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과 이런 자신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 담긴 통곡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기초의 터가 놓인 성전의 규모가 과거 솔로몬 시대의 성전보다 외형적으로 규모가 훨씬 작다는 것에 대한 실망을 담은 대성통곡이었습니다. 통곡 소리가 기쁨의 환호를 외치는 소리와 뒤섞여 함성이 되었으며 백성들은 그 소리를 분간하지 못했다고 에스라는 전합니다.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13)

우상 숭배자의 제단과 신전은 복수를 사용하여 규모와 화려함 등을 자랑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제단(17:6)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왕상 8;22),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을 때도 여호와의 제단은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의 화려함과 규모의 크기로 신앙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함성은 통곡을 잠재웁니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본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을 견고히 세워나가는 일에 게으름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은 만들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더 높이는 일에 솔선수범하며,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본이 되는 걸음을 통해 신앙을 함께 만들어가야 자신의 신앙이 견고해집니다.

  내가 아무리 신앙을 잘해도 주변이 오염되면 자신도 그 오염에 물들어 자신도 모르게 넘어지는 자가 됩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세속에 오염되어 있는 영혼들에게 참된 영의 양식을 공급하여 그들에게 진짜 소망과 희망의 길을 보게 해야 합니다. 이 일에 헌신하며, 사람들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같은 우상 숭배적 요소에 미혹 당하지 말고, 오늘도 진리의 말씀의 꽃을 피우는 신앙의 본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다음 세대를 위하여 신앙의 본이 되는 길을 걸어가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야하지만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과연 신앙의 본이 되는 모습인지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뿐입니다
어리석은 모습과 지혜롭지 못한 나의 모습들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과연 나는 공동체를 위하여 다음세대를 위하여 신앙의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나로 인하여 힘든 상황이 생기거나
나로 인하여 상처 받지는 않는지
나로 인하여 서운함이 없는지
나로 인하여 고통의 시간들이 되지는 않는지
나를 점검하며 또 점검해봅니다
자격이 없는 나를 발견하며 다시 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견고히 세워나가기를 힘쓰고 애쓰는 오늘이 되기 위하여
한 걸음 나아갑니다
공동체의 일을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너지는 마음일지라도 다시 부여잡고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신앙을 가진 성도로서 공동체를 위하여 ,다음세대를 위하여 본이 되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지금 나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인지 돌아보면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의 화려함과 규모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신앙을 바라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견고하고 바르게 세워나가 세상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명을 충성되이 기쁨으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신앙을 바르게 세우는 일에 게으름이 없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당장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본이 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profile_image Jsw126 작성일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에 따른 불의한 자의 길로. 가게된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복된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이스린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들로서 자랑스러워 하였지만 하나님의 믿음을 믿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숭배 하는 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신앙을 믿지 않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지켜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세사을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위해 신앙을 지켜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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