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세워져야 할 세 가지 가치관 = 스 2장 1 ~35절
페이지 정보
본문
10일(목) | 스 2장 1~35절 | 세워져야 할 세 가지 가치관 |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2: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2: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2: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2: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2:7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2: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2: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2: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2: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2: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 2: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2: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2: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2: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2: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2: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2: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2:21 베들레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2:22 느도바 사람이 오십육 명이요 2:23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27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2: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29 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2:30 막비스 자손이 백오십육 명이요 2:31 다른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2:32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2: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2: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2:35 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
(도입)
역사에 ‘키루스’로 그 이름이 남겨진 고레스 왕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을 이끌고 바벨론을 무너뜨리며 역사 속에 두 가지의 업적을 남깁니다. 하나는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왕이 됩니다. 또 하나는 제국을 다스리는 ‘관용 정책’이었습니다. 일명 ‘고레스의 칙령’입니다. 이런 ‘고레스의 칙령’은 그의 뛰어난 전략적 정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절대주권자요,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렘 25:11~13)과 (렘 29:10)에서 이미 70년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B.C. 537년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1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B.C. 458년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또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에스라가 두 번째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는 스룹바벨에 의해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분류의 구분을 통해 자신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예루살렘 가운데 세워져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가 80년 전에 자신들보다 먼저 귀환한 선조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우리는 에스라가 제시하고 있는 ‘족보’와 ‘지역’의 제시를 통해 그가 세 가지의 가치관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에스라가 제시하고 있는 이 세 가지의 가치관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가치관으로 이겨나가야 할 것인지, 어떤 가치관으로 자신을 세워야 할 것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1~2) 세상의 소유로부터 얻어지는 가치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언약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이 시대 앞에 세워나가야 합니다
B.C. 458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80년 전의 역사를 회고합니다. 그는 선조들의 귀환을 통해 두 가지 관점의 회복을 돌아봅니다. 첫 번째는 B.C. 605년 바벨론의 제1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 대한 ‘70년의 회복’을 돌아봅니다. 두 번째는 B.C. 516년에 재건된 스룹바벨의 성전을 돌아보면서 B.C. 586년에 무너진 성전의 회복에 따른 ‘70년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이 두 관점은 (렘 29:10)의 말씀에 따른 언약의 성취였던 겁니다. 제1차 포로 귀환이 있을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자신이 장악한 나라들을 각각의 ‘도’로 표현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한 각 도가 ‘20개’에 이르게 됩니다. 에스라가 유다를 나라로 표현하지 않고 ‘유다 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이 여전히 이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 유다는 페르시아가 다스리던 ‘20개의 도’ 가운데 ‘다섯 번째’인 ‘제5도’에 속하였습니다.
에스라가 첫 번째 포로 귀환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을 거론합니다. 이것은 (삼하 7:16)의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그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라고 언약하셨던 언약이 역사 가운데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스 3:2)과 (학 1:1)과 (12절)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윗의 혈통 ‘여호야긴 왕’의 장자 ‘스알디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절)의 ‘예수아’와 동명이인의 ‘느헤미야’와 ‘모르드개’를 포함한 10명이 ‘스룹바벨’과 함께 거론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가 한 개인에게 국한되어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민족 차원에서, 나라 차원에서 이뤄진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비록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잠시뿐인 사탕발림에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분명한 언약적 가치관으로 자신을 이 시대 앞에 세워나가는 에스라와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20) 고난의 때를 이겨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진일보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이 시대 앞에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에스라는 스룹바벨이 지도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던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것을 크게 두 분류로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손별’ 명단(3~20절)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는 ‘출신지’ 또는 ‘지역별’ 명단(21~35)을 제시합니다. 에스라는 이 과정을 통해 두 가지에 관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로 귀환은 강제집행이 아니라 희망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손별’과 ‘출신지’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이 대부분 남유다지역 출신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열두지파 가운데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 출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 2:64)에 의하면 제1차 포로 귀환자들 가운데 남종과 여종, 그리고 노래하는 자들 모두를 포함한 수가 49,897명이었습니다.
귀환의 수에는 북쪽에 있는 지파들이 대부분 빠져있습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았을까요? 그 답은 (스 8장) 이하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불안정하고, 삶에 대해 불투명한 예루살렘에서 다시 힘겹게 살아가는 것보다 현실을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관의 결여’입니다. 현실이 신앙을 잡아 먹어버린 결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하나의 종교 행위가 되어버렸던 겁니다. 그러니 고생이 예견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북쪽 지파뿐만 아니라 귀환을 포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신앙의 삶보다는 현실을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무너져버리면 현실의 삶은 더 크게 무너짐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고난의 때를 이겨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진일보하게 세워나가도록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이 시대 앞에 자신을 세워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1~35) 세상눈으로 볼 때는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기를 기뻐하는 가치관으로 이 시대 앞에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에스라는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을 설명할 때 스룹바벨을 앞세워 포로의 귀환은 언약의 성취에 따른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귀환자들의 자손별 분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신앙관의 가치관이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증거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귀환자들을 ‘출신지별’로 분류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을 전합니다. 이때 ‘출신지별’ 귀환자들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주목하도록 합니다. 첫 번째는 ‘베들레헴 지역의 사람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삼상 16:1)과 (13절) 그리고 (삼상 17:58)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기를 기뻐합니다.
두 번째는 (23절)의 ‘아나돗 사람’, (24절)의 ‘아스마웻’, (25절)의 ‘그비라’와 ‘브에롯’, (26절)의 ‘라마’와 ‘게바’, (27절)의 ‘믹마스’, (33절)의 ‘로드’와 ‘하딧’, ‘오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지역입니다. (삿 20장)과 (21장)에 등장하는 베냐민 지파의 범죄행위가 동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삿 21:6)에 의하면 이로 인해 베냐민 지파는 멸절의 위기 가운데 놓여집니다. 그 이름만 유지할 정도로 아주 미약한 지파가 됩니다. 이런 미약한 지파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번성시켜 줍니다. 이제는 이들의 걸음이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됩니다. 은혜 입은 자의 은혜가 계속되려면 세 가지 측면에서 분명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갈 5:16)의 말씀처럼 항상 성령 안에서 살아가며 행동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롬 12:12)의 말씀처럼 소망 중에 인내함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히 3:14)의 말씀처럼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비록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베냐민 지파 지역의 사람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기를 기뻐하는 가치관으로 이 시대 앞에 자신을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에스라가 감동의 눈으로 제1차 포로 귀환의 명단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언약의 가치관’,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신앙의 가치관’,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기를 기뻐하는 가치관’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에스라처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 가치관으로 자신의 만족은 채울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만족은 채워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가치관의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회복시키는 가치의 관점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으로 세워진 삶은 그 가치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바른 가치관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창조 회복의 가치관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이전글(9월 11일) 본이 되는 성도의 신앙 = 스 3장 8 ~13절 26.09.11
- 다음글(9월 9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 = 스 1장 1 ~4절 26.09.09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오늘도 변함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시간들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나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인도하여주시니 감사의 고백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금의 혼탁한 시대에 하나님을 향하여 세워져야 할 나의 가치관은 어떠하여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나는 과연 어떠한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나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신앙을 점검해보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물질의 욕심이 없다고 하면서 물질을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시기와 질투와 욕망이 없다고 하면서 위선의 탈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오늘도 나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를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언약의 가치관을 가지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말씀을 의지하며 적극적인 신앙의 가치관을 가지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기뻐하는 신앙의 가치관을 가지고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미련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는 성도로서의 삶이되어
나의 만족을 채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회복시키는 관점으로
달려가는 지혜로운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현실의 삶에 안주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은 북쪽 지파의 모습과 저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당장 눈앞에 놓인 것을 나의 가치관,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언약적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신앙을 세워나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내 시간을 쪼개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기쁨으로 여기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애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역사에 '키루스'로 그 이름이 남겨진 고레스 왕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을 이끌고 바벨론을 무너뜨리며 역사에 두가지 업적을 남깁니다.하나는 세계 최강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왕,또 하나는 제국을 다스리는 관용정책은 고레스의 칙려이 발동 되었을 나타난 정책 입니다.
B.C537년에 스룹바벨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한을 하였습니다.고레스른 바벨론이 무너뜨리고B.C605년이 되기전 597년에 페르시아 제국이 완성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