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 왕상 22장 22~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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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월) | 왕상 22장 24~28절 |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
22: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22:25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22:26 이스라엘의 왕이 이르되 미가야를 잡아 성주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2:27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하였다 하라 22:28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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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에 대한 공방전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늘 뜨거운 감자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놓고 누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전하는 ‘참 선지자’인지에 대한 공방이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사이에 벌어집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여 ‘말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는 ‘바알의 뜻을 말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이며, ‘여호와의 선지자’는 ‘여호와의 뜻을 말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로서 (신 18:18)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선포해야 합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는 미래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으며, 회개와 독려를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볼 때, 장차 올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드기야와 미가야 두 인물 가운데 누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인지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거울로 조명해 보도록 합니다. 참 선지자가 추구하는 것과 거짓된 선지자가 추구하는 것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관계 설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를 향해 어떤 음성을 들려주고 계실까요?
(24~25)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진실의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전쟁은 왕이 아람을 진멸할 것이라는 시드기야의 예언에 아합은 흡족해합니다. 그러나 남북 연합군의 패전과 아합 왕의 죽음을 예고하는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에 아합 왕은 대노합니다. 감정이 격해진 시드기야가 미가야에게 다가섭니다. 미가야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취합니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24절) 뺨을 치는 것은 상대에게 극도의 모멸을 주는 행위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가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24절) 시드기야에 의하면 자신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 미가야에게 말씀을 준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이 미가야의 입술을 통해 증거됩니다.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25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는 교만과 독선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가야에게 행한 행동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도전적 행위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합이 벤하닷에게 패하여 죽는 그날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골방에 몸을 숨지만 그날이 시드기야에게 죽음이 임하는 날이 될 것을 하나님은 미가야의 입을 통해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참 선지자는 마가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진실의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26~27)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자의 권력과 힘의 세력에 압도당하여 비록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더욱 견고하게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나가는 말씀의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아합은 남북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패전할 것과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기로 결정합니다. 아합은 자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미가야를 구금하는 일에 요아스가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합니다. 아합은 명합니다. “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올 때까지 이놈을 옥에 가두어 두라! 그리고 먹고, 마실 것을 죽지 않을 정도만 주도록 하라!”(참고, 27절) 미가야를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두 가지의 큰 이유 때문에 그를 살려둡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가야의 예언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불길한 것을 예언한 미가야를 죽였을 때 미가야가 예언한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칠지도 모른다는 미신에 따른 판단이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풍족하지는 않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 줄 것을 명합니다. 미가야가 자신을 저주하더라도 그 저주하는 힘이 쇠약해져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모든 것이 이방의 샤마니즘적 요소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미가야처럼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자가 권력과 힘을 앞세워 우리를 압도하며, 자신의 불의를 우리 가운데 이루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들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이들로 인해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십니다. 고통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가야처럼 자신을 하나님 앞에 더욱 견고하게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8)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위기 가운데 놓일 때도 불의한 자들에게 비유를 맞추는 아첨의 입술이 되지 말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의 걸음을 걷는 참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가야는 시드기야와 같이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미가야는 말합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28절) 미가야가 전한 예언의 말씀의 결론은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였으니 당신은 이 예언의 말씀대로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자신 앞에 놓인 위기 가운데서도 끝까지 진리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마가야는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편에 서지 않도록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28절) 우리는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미가야처럼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뒤바뀌기를 ‘백번’을 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곤경이 몰아닥치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위기 가운데 놓여 있을 때도 불의한 자들에게 비유를 맞추는 아첨의 입술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의 걸음을 걷는 참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선지자들이 전하였을 때 선지자들이 겪었던 공통적인 사항은 ‘곤란과 역경’이었습니다. 누가 와서 ‘집 사주고’, ‘차 사주고’ 하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의 종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부귀와 물질’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면 단언합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미가야를 기억하십시오! 예레미야를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암흑시대에 쓰임 받은 종들은 거의 모두가 몸서리치는 환난을 겪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계 6:11)은 마지막 때의 영적인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언약 백성’의 수가 차기까지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죽임을 당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계 20:6)의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가장 복 있는 자’가 됩니다. 미가야에게 주신 말씀을 되돌아보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하나 생겨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실의와 좌절 그리고 절충주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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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오늘의 말씀이 이 시대에 들려주는 음성인것 같습니다
악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는 참 선지자도 많지만
그렇지 못하고 거짓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더 많아지고 그 거짓된 말씀앞에 넘어지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이 시대
바른 말씀의 분별력이 없어 어느것이 가짜이고
어느 것이 참 인지를 알지 못하는 혼탁한 시대입니다
바른 말씀에는 귀 귀울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거짓으로 포장한 말씀에는 귀 기울이는 세상입니다
거짓은 거짓을 포장하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으로 위장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자들의 권력과 힘에 굴복당하지 않는
참된 진리의 말씀에 나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에 순복하는 자세로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참된 일꾼의 자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삶이 되어 참된 선지자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이 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