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 왕상 22장 15~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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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금) | 왕상 22장 15~23절 |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
22:15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22:1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말하겠느냐 22:17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2:1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22: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2: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2: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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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가운데서도 마지막의 때에 이르게 되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현상은 ‘말씀의 기갈함’입니다. 두 번째로는 거짓된 영들이 극도로 활개를 치게 되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가운데서도 ‘마지막의 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들리는 ‘영적 귀’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유적들 가운데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당시 궁전을 장식하였던 ‘상아 조각상’은 아합이 얼마나 교만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지 못한 자였는지 한눈에 알게 해줍니다. 이런 아합은 이세벨의 그늘에 있는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아합은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관변용어용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 미가야를 세웁니다. 여호사밧의 요구대로 아람의 벤하닷과 싸울 것에 대해 묻습니다. 어용들은 어김없이 아합이 원하는 전쟁의 참여와 승리를 예언하며 장담합니다. 미가야가 드디어 입을 엽니다. “나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명세합니다. 나는 오직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만 말할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 점은 듣는 것으로부터 그 구분 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귀입니다.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는 어떤 영적인 귀를 가져야 할까요?
(15~17) 자신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의지적인(인본적인) 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영적인 귀를 가져야 합니다
어용의 무리들의 예언을 들었던 아합이 미가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15절) 이때 미가야의 입에서 놀라운 대답이 나옵니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15절) ‘관변용어용 선지자들’과 동일한 말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들은 아합 왕은 미가야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다그칩니다. 미가야의 입이 다시 열립니다.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17절) 미가야는 왜! 처음부터 아합에게 하나님의 진실 된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인본적인 귀를 가진 아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세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가야는 왕의 육을 즐겁게 하는 아첨하는 말이 아니라 하늘의 영의 말씀을 전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자기에게 행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하늘의 음성은 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에게 사탕발림의 소리가 아니라 질책을 가하는 소리를 통해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영의 귀’는 나의 ‘의지적인(인본적인) 귀’를 내려놓을 때만이 들리는 귀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책망의 말씀까지도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자신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의지적인(인본적인) 귀가 아니라 ‘영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18) 진리가 아니라 자기중심의 뜻과 방향을 위로해 주는 음성을 들으려 하는 어리석은 자의 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들은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18절) 아합이 생각하고 있었던 선지자의 기준은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에게 신의 이름으로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자였습니다. 아합이 볼 때 미가야는 이런 일을 역행하는 자였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들의 사기를 꺾어서 적대국을 이롭게 하는 자였습니다. 진리가 아니라 자기중심의 뜻과 방향에서 위로를 찾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의 귀에는 진리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자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장하여 자신에게 감미로운 소리로 접근하는 말씀이 더 잘 들려옵니다.
만약 아합이 미가야 선지자가 전한 예언의 말씀을 따랐다면 그 예언의 말씀은 ‘쓴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구한 너무나도 고마운 ‘단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이 없습니까? 마치 영적으로 암흑시대였던 ‘중간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에 따르면 혼탁한 영적 암흑시대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자기중심의 뜻과 방향을 위로해 주는 음성을 들으려 하는 어리석은 자의 귀를 닫아야 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9~23) 진리의 말씀을 들을 영적 귀를 닫아버리는 자는 스스로를 미혹의 영에 넘기고 죽기를 갈망하는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미가야는 진리의 말씀에 대해 오판하고 있는 아합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19절)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최후의 기회를 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울 뿐만 아니라 누구도 변명할 이유를 없게 만드는 심판입니다. (20절)과 (21절)에 보면 미가야는 아합의 안타까운 모습에 대해 통분합니다. 왕은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보다 어용들의 거짓된 말에 위로받기를 좋아하고, 회개할 기회를 스스로 던져버립니다. 아합은 진리의 말씀을 들을 영적 귀를 닫은 자였습니다. 마치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죽기를 갈망하며, 그 죽음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도록 만반의 준비를 스스로 갖추는 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짓밟은 아합에게 심판이라는 파멸이 선포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23절)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심판에 따른 ‘예고’와 ‘경고’ 그리고 ‘최후의 통첩’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더 이상 회개하지 않기로 작정한 아합에게 철퇴를 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가리켜 ‘마지막 추수의 결실을 맺는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스스로를 미혹의 영에 넘기고 죽기를 갈망하는 자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거짓 선지자들을 통한 미혹은 사탄의 효과적인 공격 방법 중 최선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아주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향해 영적 코드와 주파수를 맞출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영적인 귀보다 의지적인(인본적인) 귀가 발달하여 있습니다. 자신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듣길 원하며, 자기중심의 뜻과 방향을 통해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 관하여 말을 합니다. “스스로를 미혹의 영에 넘겨, 죽기를 갈망하는 자와 같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진리와 생명의 씨앗은 뿌린 대로 그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통해 ‘예고’와 ‘경고’ 그리고 ‘최후의 통첩’을 내리실 때처럼, 지금도 이 시대 그리고 우리를 향해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시대는 ‘은혜의 시대’임과 동시에 ‘최후 보류의 시대’가 아닙니다. ‘최후통첩’의 시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하나님을 향해 영적 귀가 열려 있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주의 날’에 대한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허다한 무리’와 같은 자들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내침을 당하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짐을 당하게 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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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미가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지만
아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귀기울여 듣기 보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어리석고
우둔한 자의 모습을 합니다
영적으로 혼탁한 그 시대의 아합의 모습이나
지금의 세상 모습이 똑 같은 모습입니다
각종 미디어에는 우상이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어느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우상을 앞세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혼탁한 세상에 넘어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세밀히 듣는 자녀가 되도록
말씀과 기도로 나를 무장하고
세상의 그 어떠한 세상적인 방법과 타협하지 않도록
날마다 견고한 신앙위에 나를 세워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과 영적 코드를 맞추는 신실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