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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 = 왕상 15장 25~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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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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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왕상 1525~32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

 

15:25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15:26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15: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15: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15: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15: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15: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5:32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도입)

남 유다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사가 나라를 다스릴 때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나답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던 두 왕국의 왕들은 하나님을 향해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왕이었으며, 다른 한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왕이 선하다’, ‘악하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왕의 성품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왕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인가? ‘하나님을 떠난 자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런 신앙의 기준점은 왕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25~26)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악을 단절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창시자였던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나답에게 새로움의 기회가 부여됩니다. 그러나 나답은 새로운 왕국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으로 출범시킬 기회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우상 종교의 창시자였던 아버지 여로보암의 틀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와 비교할 때 아사는 어떠했을까요? 새로움의 기회를 아버지 아비얌과 할머니 마아가가 극진히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그모스와 밀곰 등 여호와를 욕되게 하였던 우상을 타파하고,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전화점으로 삼습니다. 여로보암의 악행을 나답이 계속해서 따랐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26)

벧엘과 단을 예배의 처소로 삼으며 여호와를 대신하여 새로운 종교의 우상인 금송아지신상을 만든 여로보암의 길을 따릅니다. 북이스라엘의 형편에 맞는 새로운 종교의 절기를 만들어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신앙의 절기를 지키지 못하도록 행한 여로보암의 길을 따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의 길을 걸어갑니다. 영적인 분별력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길이었는지, 아니면 악한 길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자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의 관습을 아사처럼 자신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결단력과 이것을 수행할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의 단절하는 영적 분별력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거울삼아야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악을 단절하는 영적 분별력을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합니다.

 

(27)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혼돈의 세월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 순위로 삼는 기준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진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나답은 백성들을 아버지 여로보암처럼 죄악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의 영토 깁브돈을 블레셋이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나답은 바아사를 군대 장관으로 세우고 바벨론의 침략을 응징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바아사는 깁브돈에서 내란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합니다. 새로운 전환점에 섰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을 걷지 않고 악한 길을 걸었던 나답을 하나님께서 심판합니다.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27) 블레셋의 침공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론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회개는 고사하고 하나님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 나답을 블레셋의 침공과 그의 부하 바아사의 반란으로 심판하실 것을 결정합니다. 나는 아사처럼 하나님과 교재를 우선으로 하는 선한 자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나답처럼 혼돈의 세월과 함께 짝을 이루며 살아가는 악한 자의 모습입니까? 우리에게는 항상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정하는 길이며, 다른 한 길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혼돈의 세월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혼돈의 세월과 함께하는 영적 타락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기준점을 가져야 합니다.

 

(28~32)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군사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여로보암의 온 집의 사람들을 멸해 버립니다. 여로보암이 집을 완전히 멸한 것은 바아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공의의 심판과 함께 예언의 이루심이었습니다. 성경은 여로보암의 온 가족들이 완전히 진멸하게 된 원인을 설명합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30)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슴에 안고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여로보암과 나답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노엽게 합니다. 나의 인생이 헛수고의 삶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가운데 신실하게 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쫓아 지켜 준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지는 카이로스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로 세움을 받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악으로 여기며 철저히 그 악으로부터 단절을 선포하며, 혼돈의 세월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에 둡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는 (28:2)의 말씀처럼 모든 복이 그에게 임하고, 그에게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어떠한 신앙의 자세로 나아갈까?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악의 극치를 달렸던 북이스라엘의 나답의 결말은
온 집안의 멸족이었으며
남 유다의 아사는 각종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기위해서는
세상의 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근원들을 단절하는 신앙이 되어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히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profile_image 다니엘쌤 작성일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킬수 있도록 '기회'의 은혜를 베푸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답의 아버지 여로보암은 하나님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의 댓가는 공의 심판의 판결앞에 놓여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때에 단행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아들 나답에게  돌이킬수 있는 시간과 바른 말씀과 함께 선택의 기회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답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그의 아버지가 걸어갔던 '악한 길'을  선택을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째 지금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능력과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선택할때, 분명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동일하게 저에게도 '하나님의 음성'듣게 하시며 돌이킬수 있는 기회를 주실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자가 되어 악을 단절하고 , 하나님의 교제를 최우선의 기준점으로 삼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길'에 서길  기도합니다.
둘째 나답이 아버지의 바른 신앙의 본을 보고 자라났다면 나답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나의 자녀에게 신앙의 본이 되는 부모가 되어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선한자'로 살아갈수 있도록 삶으로 신앙교육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우리의 죄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겸손히 무릎꿇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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