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절망을 희망으로 = 슥 9장 1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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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수) | 슥 9장 11~17절 | 절망을 희망으로 |
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9: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9: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9: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9: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9: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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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배반한 불신앙으로 무너진 나라, 다시는 고향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포로의 비참한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절망의 사슬로 묶어버립니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옵니다. B.C. 537년, 바벨론의 정복자였던 고레스에 의해 칙령이 발동됩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해방령’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는 그들을 질책합니다. 16년간 방치되었던 성전 재건에 힘이 실립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독려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성전의 재건을 통해 형식적인 건물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성전의 재건을 이루도록 합니다.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도록 합니다. 우리는 소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 앞에 그리고 인류 가운데 놓인 절망을 우리는 어떻게 희망으로 바꾸어가야 할까요?
(11~12) 성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 안에서 강해지고, 하나님 안에서 응답받는 회복을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B.C. 586년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배반을 먼저 말해야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우상숭배와 불의 속에 살아가던 하나님을 향한 배반의 모습은 자신들이 원하던 화려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갇힌 자’와 같이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의 삶이었으며, ‘물 없는 구덩이’와도 같은 절망적이고, 비참한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무슨 자유를 찾을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서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갇힌 자’와 같이 소망을 잃어버린 그들의 모습을 갑절로 회복시켜 줄 것을 약속합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니라!”(12절)
‘요새’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갑절’은 하나님께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절망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성도는 세 가지의 분명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첫 번째는 ‘갇혀 있지만 소망을 품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요새 안으로 돌아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강해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안에서 갑절로 응답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응답받는 그 응답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음란하고, 타락한 세상은 우리의 영혼을 소리 없이 죽여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강한 요새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3~15) 소망과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전능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이끌어가는 과정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상황들은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전 지을 재료에서부터 주변의 악조건과 대적들의 위협은 자신들의 상황을 더욱 힘들고, 어렵고, 지쳐버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놓인 문제 앞에 해결할 답을 찾지 못합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스가랴 선지자는 중요한 한 가지의 답을 내어놓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절박함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원하는 ‘세 가지의 모습’으로 자신들을 만들어 모든 상황을 이겨나도록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당길 수 있는 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만든 한계를 가진 활이 아니라 전능의 하나님이 당길 수 있는 활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놋으로 만든 활’의 능력은 나무로 만든 활이 뚫을 수 없는 과녁을 파괴시켜버리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당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활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당겨 쏠 수 있도록 ‘끼운 화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놋과 같은 활이 만들어졌다면 그 놋과 같은 활의 능력을 발할 수 있는 ‘화살촉’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사 49:2)에 나타난 말씀처럼 ‘갈고 닦은 화살’인 ‘마광한 살’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활과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마광한 살’인 예언의 말씀으로 화살의 촉을 세워야 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용사의 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용사의 칼은 (히 4:12)의 말씀처럼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소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절박한 세상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들어가고, 이끌어가는 말씀의 신앙의 과정을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6~17) 세상이 주는 번영과 풍요를 쭉정이같이 여기고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울 번영과 풍요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미래의 삶을 희망으로 바꿔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회복을 통해 자신이 택한 선민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 백성을 ‘양 떼같이’ 구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두 번째는 선민을 ‘왕관의 보석과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이 되게 할 것을 약속합니다. 세상의 ‘사자’와 같고, ‘곰’과 같은 능력 앞에 비록 ‘양’과 같은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전능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구해낼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게 할 것과 우러러보는 대상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그들이 누릴 번영과 풍요는 ‘곡식’과 ‘포도주’와 같은 땅의 소산물인 물질을 통해서도 그 역사함이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심지어 다음 세대들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주도적인 위치에 둘 것을 약속합니다. 희망이 가득합니다.
마귀의 권세를 앞세운 ‘거짓된 번영’에 속은 자는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번영과 풍요를 부러워하지 맙시다.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이 멋있고, 화려해 보여도 그것은 쭉정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실 ‘번영’과 ‘풍요’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의 삶을 희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왕관의 보석과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영향력으로 세상을 선도해 나가며 자신의 삶에 대해 희망을 열매로 바꿔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이 불의하다고 함께 불의한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이 분쟁을 일삼는다고 함께 분쟁을 일삼는 자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세가 아닙니다. 절망 가운데 놓여 있는 세상을 향해 빛이 되고, 소금의 맛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강해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응답받고, 회복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희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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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성전재건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회복을 원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이스라엘이 불신앙 가운데
절망속에 빠져있었던 모습과 같습니다
새벽시간에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
교회를 우습게 알고 짓 밟는 정부
불의와 불법과 타락이 난무한 이 나라
평등법을 통과시키려하는 정부를 보면서
교회와 성도가 무릎꿇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잠잠하여서는 안됩니다
깨어서 기도할 때 절망속에 놓여져 있는 이 나라가
희망을 바라보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놓여지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 머무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신앙도 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