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영적 승리자 = 벧후 3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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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목) | 벧후 3장 1~7절 | 영적 승리자 |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3: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도입)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 빈 자리를 로마에 도착한 베드로가 채웁니다. 로마에서 사역을 펼쳐나가던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와 이단들의 침투로 흔들리고 있는 교회를 향해 두 통의 서신을 기록합니다. 전서는 로마 정부의 박해로 인해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를 영적으로 일으키는 데 초점을 두고 기록됩니다. ‘격려 서신’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리고 후서는 교회 내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해 기록됩니다. ‘경계 서신’의 성격을 가집니다. 거짓 교사들은 사도들을 비방하며 말도 안되는 거짓된 교리로 구원의 진리를 비방합니다. 이들은 헛된 자랑과 함께 육체의 정욕을 일삼으며, 쾌락을 사랑하도록 미혹합니다. 이들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을 논리라는 측면에서 논하고, 구원의 신비를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인증하려 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앞에 우리는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당당해질 수 있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앞에 어떤 모습의 영적 전사,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할까요?
(1~2) 탐욕과 정욕에 빠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는 영혼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분별력을 가지도록 그리스도의 교훈이 담긴 진리로 이들을 일깨우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시 ‘양의 탈’을 쓰고 교회에 침투한 이단들은 예수의 재림이 없다는 것과 당장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을 악용하며 선동을 일삼습니다. 사람들을 선동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만족과 현실적 상황에서 유익을 구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이런 거짓된 억지의 주장에서 깨어나도록 합니다. 정욕과 탐욕에 물들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을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영적으로 순수한 자리에 자신들을 올려놓도록 합니다. 이를 위해 사도들을 통해 선포되고, 가르쳐졌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베드로는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뿐만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증거된 ‘종말’과 구원에 따른 ‘대속의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의 교훈들’인 ‘명하신 것’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마귀가 ‘흔들고’, 마귀에 의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교훈이 담긴 진리로 일깨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신 것과 대속의 십자가는 논리와 이해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승리가 선포된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 신앙으로 일깨워야 합니다. 탐욕과 정욕에 빠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는 영혼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분별력을 가지도록 그리스도의 교훈이 담긴 진리로 그들을 일깨우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3~5) 하나님의 계시를 비웃고, 경시하는 자들에게 세상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당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정당성을 만들어가기 위해 주님의 재림을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행 1:11)은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계 1:7)은 이렇게 전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재림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종말의 진리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순리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4절)라며 진리를 오히려 헛된 소리라며 비웃습니다.
거짓된 교사들은 정욕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을 정당화하고, 죄악에 따른 심판과 재림이 없다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가르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살전 4:15)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살전 5:1~11)은 주님의 재림의 때와 시에 대해서 “밤에 도둑같이 그날이 임할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떤 것도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장차 임할 것에 대한 계시의 말씀 또한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비웃고 경시하는 자들에게 세상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7) 악을 멸할 불의 심판을 선포하며 남은 자를 향한 회개 사역을 굽힘 없이 펼쳐나가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 세상의 불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합니다. 물로 죄를 쓸어버리고, 씻어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상의 불의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향한 ‘유황과 불’(창 19:24)의 심판으로 그 모습을 그려냅니다. 세상을 향해 심판할 때 요한 계시록은 세 번의 ‘불못’을 계시해 줍니다. 첫 번째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유황불 못’(계 19:20)에 던져집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유황불 못’(계 20:10)에 던져집니다. 세 번째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불의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불못’(계 20:14)에 던져지며,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 칭합니다. 바로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7절)입니다.
심판이 단행되기 전까지 일어났던 ‘일곱 나팔 재앙’은 구원할 자 중에 ‘남은 자들’인 아주 완악한 자들을 회개 시키기 위한 강력한 재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이와 같은 심판과 남은 자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 사역’을 펼쳐나가는 일에 굽힘이 없어야 합니다. 악은 ‘불 심판’으로 멸함을 당한다는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은 자를 향한 ‘회개 사역’을 굽힘 없이 펼쳐나가는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고전 15:57)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증거합니다. 영적 싸움의 승리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기게 하며, ‘믿음으로 이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일들을 위해 (요 14장, 15장, 16장)은 ‘파라클레토스’인 ‘보혜사’를 예수님께서 약속합니다. ‘도와주시고’, ‘능력주시고’, ‘지켜주시는’ 성령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육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사탄에 대하여’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 2장)과 (계 3장) 그리고 (계 21장)은 영적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에 대해 언급합니다.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것’이며, ‘감추어진 만나’를 먹게 되고,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줄 것’이며, 승리와 거룩을 나타내는 ‘흰 옷을 입을 것’을 약속합니다.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비웃고 경시 여기는 자들에게 세상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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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세상의 편리함과 화려함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편리함속에 교회들은 점점 세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프로그램이 교회에 들어오고
예배는 점점 간소화 되어져가고
기도의 시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pc방에 가지 않도록
교회에 컴퓨터를 설치하는 교회들을 보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함속에 세상의 기계들에 의하여
영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가 말씀으로 무장하여 성도들을 영적으로 건강하게
지도하여야 하는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며 버릴 것은 버리고, 회개의 신앙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이끌어가는 교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 즉 나의 모습도 영적으로 병들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사명과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을 건강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핍박이 심했던 시대에
생명조차 부지하기 힘든 긴박함속에서
베드로는 안으로 밖으로 사역 사명을 감당합니다.
베드로는 왜 그렇게까지 할까 묵상이 되어졌습니다.
베드로가 만난 하나님과 내가 만난 하나님이 다르기때문일까?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하나님의 뜻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하셨고,
우리의 청지기 사역또한 동일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사역과 사명을 통하여
우리를 고통과 고난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물이 고이면 썩은내가 나지만, 흘러가는 물에는 생명이 살듯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의 면류관 뿐만 아니라 상급과 이 땅의 형통함이라는 축복까지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나를 승리자 되게 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 사명들을 하나님의 방법되로
안으로 밖으로 잘 감당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