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보배로운 자 = 벧전 1장 18~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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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화) | 벧전 1장 18~21절 | 보배로운 자 |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도입)
성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필연적인 변화의 삶을 요구받게 됩니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의 생활을 하던 베드로는 형제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됩니다. 그의 성격은 매우 열정적이고, 다혈질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유대 불법적인 법정에 붙잡혀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과 관계를 부인하면서 예수님의 가슴에 제일 먼저 못을 박은 장본인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 26:72, 74) 이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보배로운 자리에 세웁니다.
베드로는 생명의 위협 앞에 놓인 ‘디아스포라’를 향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18, 19절) 성도는 어떻게 보배로워졌나요? 성도는 보배로운 자로서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까요?
(18~19)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아서 보배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베드로는 죽음의 위기 앞에 서 있는 ‘디아스포라’들을 향해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조상 아담의 원죄 안에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자신들이 죄사함을 받은 것은 자신들의 혈통과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로 말미암아 우상숭배에 만연하였고, 하나님을 향해 변절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보배로운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18절) 성도는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불릴 이름입니다. 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자가 되지 맙시다. 성도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육신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헛된 피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가던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애쓰고, 땀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아서 보배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20) 성도는 마지막 날 하나님으로부터 실질적인 은혜의 해택을 입을 보배로운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세 전부터 영원한 상태로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예정의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은 (창 3:15)에서 언약하셨던 약속을 대속의 피 흘림으로 성취하였던 ‘언약사건’이었습니다.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20절)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은 마지막 때를 위한 ‘영원한 언약’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대속의 완전한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사망 권세를 향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완전하게 이룰 세 번째 날의 승리가 남아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종말의 심판’입니다.
성도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떨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영을 죽이지 못하는 육신의 죽음 앞에 떨 이유가 없습니다. (마 10:28)은 말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가 비록 자신의 육신이 죽음으로 내어 몰릴지라도 떨지 마십시오! 성도는 마지막 날 ‘영육’이 완전한 부활을 통해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실질적인 은혜의 해택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 영광을 위해 부끄럼 없이 이 땅을 마감하는 보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1) 성도는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 믿음과 산 소망을 둔 보배로운 자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가리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21절)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는’이라는 ‘피스투스’를 다른 말로 표현을 하면 ‘신실한 자들’을 말합니다. ‘믿는’이라는 이 말은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 신실한 자가 되었느냐?’를 함께 물어보고 있는 말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자가 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된 자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었습니다.
현재의 고난에 대해 굴복하지 말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서 신실한 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분에게 어떻게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둬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승천 사건은 이런 의심을 한방에 불식 시켜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이 장차 있을 성도인 나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믿을 산 소망의 자격을 가진 보배로운 자가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성도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결코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돈과 권력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견디고 이길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성도는 마지막 날 하나님으로부터 실질적인 ‘영육의 부활’을 통해 ‘영생복락’을 누리는 은혜의 수혜자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미 초대받은 자입니다. 성도는 죄악과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적극적으로 구별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쫒아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힘과 용기를 내십시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 소망과 희망을 두고 오늘도 힘 있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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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아서
보배로운 자가 되어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로서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이기게 하시고
날마다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오늘도 하나님께 믿음과 산 소망을 둔 보배로운 자로서의
삶을 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말씀안에 나의 삶이 담겨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