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무엇을 구할 것인가(1) = 왕상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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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토) | 왕상 3장 1~3절 | 무엇을 구할 것인가(1) |
3: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3: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
(도입)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요, 나라를 부강하게 이끈 왕으로 역사학자들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여기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왕 위의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약관 20세에 왕위에 오르게 될 때도 아버지 다윗에 의해 왕으로 세워지기는 하였지만 배다른 형인 아도니야와 군대 장관 요압 그리고 제사장 아비아달로 인해 늘 불안한 왕위를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울의 남은 세력이었던 시므이는 언제든지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국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4대 국적’의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해결됩니다.
문제는 솔로몬에게는 또 다른 커다란 적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능한 아버지 다윗의 죽음에 따른 여파가 주변 열강들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을 통해 돌이켜 봅시다. 나라의 안팎에 놓여 있는 여러 현안의 문제들과 위기적인 상황 앞에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구해야 할까요? 위기의 상황에서 솔로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솔로몬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해주고 있을까요?
(1) 자신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 불신앙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와를 바라보는 신앙의 선택은 자신을 영적으로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나이가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애굽 왕이 솔로몬을 사위로 맞이할 만큼 외교적으로도 그 역량을 인정받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국가들은 나라와 나라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형제의 관계’였으며, 다른 하나는 ‘봉신의 관계’입니다. ‘형제의 관계’는 서로 대등한 세력을 가진 나라들이 맺는 조약으로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외교적 관계 수립’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서로 간의 우호적 협력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왕의 혈통끼리 서로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1절)
솔로몬이 ‘애굽 왕의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합니다. 솔로몬의 당시 결혼은 국경을 넘은 사랑에 입각한 결혼이 아니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정략적인 결혼이었습니다. 그의 결혼은 애굽과 ‘형제의 나라’라는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불가침 협정’을 맺는 장면입니다. 솔로몬은 외부로부터 국방을 더욱 튼튼히 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런 선택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 11:1) 솔로몬은 자신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 불신앙의 세력을 등에 업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 왕상 (11:5, 6)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 불신앙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와를 바라보는 신앙의 선택은 자신을 영적으로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3)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신앙을 담아내지 못한 신앙의 걸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걸림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애굽과 같이 막강한 세력을 가진 나라들과 하나둘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솔로몬은 애굽이나 세상의 힘에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 의지가 온전하지 못하면 대화는 달라집니다. 솔로몬의 집권 초기 아직 성전이 세워지기 전입니다. “그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2절) 당시 중앙 성소(성전)가 건축되기 전이었습니다. 불가피한 상황 가운데 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흠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전말에 깔린 이방 여인들과 정략결혼입니다.
이방인들과 정략결혼은 혼례의 과정을 통해 서로 동맹을 맺는 수준의 단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을 수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행했다고 (3절)에서 말하지만 이것은 온전한 신앙을 담아내지 못한 신앙의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이것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솔로몬의 모습과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3절)라는 말씀은 그의 신앙이 ‘밑이 빠진 독’과 같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신앙을 담아내지 못한 신앙의 걸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걸림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 우상숭배와 결탁하지 않도록 신앙이 혼합을 이룰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향해 제사를 드릴 때 성전이 아직 건축되지 못한 관계로 산당에서 제사하였다라고 2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2절), “솔로몬이 ...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3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하여금 중앙 성소로서 성전을 반드시 건축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대목입니다. 우상숭배와 혼합을 이룰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경계하도록 합니다.
산당은 높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하늘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장소였습니다. 자신이 예배하는 신과 가까이하고자 했던 팔레스틴 지역의 이교 풍습에 기인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신앙의 정결함은 말과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 있는 신앙이 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상숭배와 결탁하지 않도록 신앙이 혼합을 이룰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적용)
솔로몬이 산당에서 예배를 드린 것은 단과 벧엘의 산당과는 그 성격에 있어서 본질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닙니다. 중앙 성소인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잠정적으로 허용했을 뿐입니다. 솔로몬은 산당에 대해 영적 경각심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가볍게 여기니 왕궁을 지었던 솔로몬은 거침없이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의 요소가 됩니다. 이런 솔로몬의 모습이 암몬 자손의 신인 ‘밀곰’을 경배하는 무서운 죄를 범합니다. 신앙이 온전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밑이 빠진 독’의 신앙이 되지 않도록 신앙의 경각심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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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솔로몬이지만
이방 나라들과 정략적인 결혼을 통하며
솔로몬의 영적 경각심이 무너짐을 봅니다
오늘의 말씀이 많은 성도들과 교회와 이 나라에게 전해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 멀기도 하며
교회는 영적 분별력이 둔감화 되어 가는 교회들이 있으며
이 나라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혼탁한 시대에
각종 매스미디어에 우상을 앞세우는 지금의 현실이
우상이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경각심을 잃어 버리면
나 또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우상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날이 되도록
오늘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
나의 삶은 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무장하는 은혜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