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불법한자의 최후 = 왕상 2장 26~35절
페이지 정보
본문
16일(금) | 왕상 2장 26~35절 | 불법한자의 최후 |
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2: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2: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2: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2: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2: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2: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
(도입)
솔로몬에게 대립의 각을 세우며 반혁을 다시 꾀하였던 아도니야가 죽음에 이릅니다. 그와 뜻을 같이 했던 요압 또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아비아달이 유배를 당합니다. 이 사건들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놓인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수넴 여인’ 아비삭을 형인 아도니야에게 주기를 간청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것이 또 다른 하나의 반역을 꾸미기 위한 계략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다윗 시대 군대 사령관 중 한 사람이며 3인의 용사 중 한 사람이었던 브나야를 통해 아도니야를 반란 음모죄를 적용시켜 제거합니다. 이어 요압과 아비아달을 제거합니다. 음모의 전말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으며, 이 사건을 통해 왕국의 ‘4대 국적’ 중 3명을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아비아달과 요압의 전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계실까요?
(26~27) 하나님을 향한 본분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야망을 앞세운 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상 2:26)은 아비아달에 관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라며 말을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인 사람 사이에 중보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정치 놀음에 끼어드는 세상의 권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수종 들도록 구별된 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언약 백성인 열두 지파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수종 들도록 구별된 레위지파가 있습니다. (레 1:5)의 말씀처럼 레위인 가운데서도 또 구별된 자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구별하신 이유는 제사장의 임무와 의미가 백성의 대표가 되어 제사를 집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본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를 제사장 직분의 존속을 통해 이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위치에 당연히 서 있어야 할 아비아달이 어디에 서 있었습니까? 정권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하나님 앞이 아니라 세속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비아달의 제거는 자신의 대적을 제거한 관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서 있어야 할 자가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권력 암투에 서 있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본분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야망을 앞세운 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본분에 충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28~31) 하나님 대신 세속화된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 대신 자신의 실리를 추구한 자는 멸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도니야의 처형과 아비아달의 유배에 대한 소식을 들은 백전노장의 군대 장관 요압은 거사가 완전히 실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재빨리 간파합니다. 그는 급히 성막으로 도주하여 자신의 처형을 모면하기 위하여 제단의 뿔을 잡습니다.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28절) ‘성막’은 거룩한 곳으로 사람의 피를 흘리는 곳이 아니었기에 요압이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제단의 뿔을 잡았다’는 것은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죄 용서를 구할 때 행하는 행동으로 일종의 도피성 제도에서 생겨난 사면 제도 중의 하나였습니다.
요압이 제단 뿔을 잡으며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30절)라고 말한 것은 제단의 뿔을 잡고 있으니 누구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법이 적용되는 범위가 진정한 회개나 고의성이 없는 살인 등을 범한 사람의 생명을 보존해 주기 위해 발동된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은 회개하지 않은 죄나 고의성을 가진 살인자까지 보호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실리와 권위를 취하기 위해 피 흘린 자였습니다. 그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집니다. 멸망으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영원함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속을 선택한 자의 최후의 모습을 통해 왜!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32~35) 하나님은 불법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켜 준행하는 자를 통해 일하시고 그런 자를 세우기를 기뻐합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으로 직을 감당하였고, 아버지 다윗과 함께 수고와 고생의 떡을 먹은 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사울)를 손대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아비아달을 살려서 유배를 보냅니다. 요압은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린 자였기에 살려두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두 사람 모두 다윗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생사고락을 같이한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여기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벗어난 행위를 하였던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박탈과 사독을 제사장 삼은 것은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군대의 장관임으로 군사법과 하나님 나라의 법인 율법과 법도와 규례에 의해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비록 솔로몬이 왕으로 있었지만 그 나라는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아도니야도, 아비아달도, 요압도 잊지 않아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야망이나 군대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솔로몬은 요압을 대신하여 브나야를 세우고, 아비아달을 대신하여 사독을 세웠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를 굳게 세우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일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불법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켜 준행하는 자를 통해 일하시고 그런 자 세우기를 기뻐합니다.
(적용)
종교적, 군사적 불법의 세력들을 등에 업고 있었던 아도니야가 왕위를 차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왕위를 허락합니다.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이 땅 위에 세우진 하나님 나라는 인간적으로 충성된 자와 유능한 자에 의해 이끌어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켜 준행하는 자를 통해 이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통해 일하시고, 이런 자를 솔로몬처럼 세워서 일한다는 것을 마음 판 깊숙이 새겨야 합니다.
- 이전글(1월 17일) 무엇을 구할 것인가(1) = 왕상 3장 1~3절 26.01.17
- 다음글(1월 15일) 상황과 실리를 쫒는 자가 되지 맙시다 = 왕상 2장 13~25절 26.01.15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음모를 꾀한 아도니야의 죽음
아도니야와 뜻을 같이 했던 요압의 죽음
제사장 아비아달의 유배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자신들의 욕망과 욕심들로 채워진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사건들을 해결합니다
아도니야와 아비아달과 요압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세속적인 권력 암투에 있었던 자들의 최후임을 바라보며
현재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나의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임을 알기에
오늘의 말씀은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며
회개와 감사를 고백하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다스림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켜 준행하여
솔로몬처럼 세워 지는 성도로서의 삶이 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세상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지키는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열번째 아들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것도
아도니아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반란을 분별하고 지혜롭게 해결하게 하신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신본주의로 세워진 자를 통하여 일하시고 계심을 묵상하게됩니다.
왕위에 오르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던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오직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해갑니다.
저또한 문제와 사건을 시도때도 없이 마주하게됩니다.
오늘의 말씀의 힘을 얻어 하나님께 지혜와 분별함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지키기를 힘써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나의 삶이 되도록 다짐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