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상황과 실리를 쫒는 자가 되지 맙시다 = 왕상 2장 13~25절
페이지 정보
본문
15일(목) | 왕상 2장 13~25절 | 상황과 실리를 쫒는 자가 되지 맙시다 |
2: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2: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2: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2: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2: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2: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2: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2: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
(도입)
다윗은 40년이라는 통치의 막을 내리고 70세가 되던 해인 B.C. 970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갑니다. 아도니야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약관 20세의 솔로몬, 그러나 그의 왕위는 늘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비록 아도니야의 반란을 막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반란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던 군대 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 그리고 아도니야는 건재했으며 여기에 골치 아픈 시므이까지 살아있었습니다.
솔로몬 왕국의 ‘4대 국적’이라 일컫는 인물들이 다 살아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이 솔로몬의 국정에 결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특별히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유언을 남겼던 것입니다. 반란에 실패했던 아도니야는 왕이 되지 못한 불만과 야망을 숨긴 채 솔로몬의 생모인 밧세바를 찾아갑니다. 아도니야는 왜! 솔로몬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 밧세바를 찾아갔을까요? 여기에 나타나는 밧세바의 반응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답을 주고 있습니다.
(13~18)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자는 실리를 얻기 위해 상황을 쫒아가고 명분에 쉽게 타협하는 옆걸음을 치는 자가 아니라 정로에 서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위치에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화평’이 목적인지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도니야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도니야는 왕이 되지 못한 불만과 포기하지 않은 야망을 숨깁니다. 화평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아왔다고 속입니다.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13절) 그의 접근은 밧세바의 모성애와 아직도 완전하게 세력을 잡지 못한 솔로몬 왕조의 불안함을 꿰뚫어 본 접근이었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이용하여 조건적 협상을 제의합니다. ‘원래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라는 말을 통해 다윗의 생존한 아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연장자요,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왕위의 법정 계승자였음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강온 전략을 펼칩니다.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15절) 살짝 한 발을 뺍니다. 심지어 ‘내 아우’라는 친숙한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로 말미암았다’라는 말을 통해 자신에게는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건재하고 있음을 내비치면서 협상의 고삐를 당기고 있습니다. 그는 협상 카드를 제시합니다. 아버지의 노년에 수종을 들었던 ‘수넴 여인’을 자신에게 아내로 주도록 요청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잃은 왕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수넴 여인’을 요청합니다. 이때 밧세바는 갈등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18절)
아도니야가 ‘수넴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것은 자신에게로 다윗의 세력들을 총집결시키겠다는 계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궁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왕위를 이어받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로 힘을 결집해 왕권을 찬탈하게 된다라는 음모가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적인 판단이 앞섰던 밧세바는 아들의 왕위 안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아도니야의 배후 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 협상에 응하게 됩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화평의 얼굴로 찾아와서 명분과 실리와 샬롬을 내세워 아주 조금 타협하라고 합니다. 인간적 판단에 의해 명분과 실리를 쫓는 어리석은 자는 이런 모략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9~21)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을 쫒아가는 자는 실리의 늪에 빠져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나님께 묻지 않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밧세바는 실리라는 늪에 빠져듭니다. 아들 솔로몬을 찾아간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21절) 한글 번역 성경에는 생략이 되어있지만 원문에는 ‘수넴 여자 아비삭을 너의 (형인)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에 대해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동질이라는 관계에 서도록 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을 쫒아가는 자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분별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하여 실리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상황을 자신의 지식과 판단력이라는 사고로 접근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세상적인 당근과 채찍이 기준이 되어 흔들립니다. 밧세바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세상을 그리고 신앙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물질의 당근과 자신의 약점에 대해 채찍으로 협박해올 때 타협을 먼저 원하는 것은 아닌지? 실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 상황을 고하는 히스기야와 같은 무릎을 영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22~25)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을 쫒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조차 등한히 여기는 영적인 우를 낳게 됩니다
솔로몬은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밧세바의 요구에 이렇게 답합니다.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22절) 수넴 여인을 아도니야가 아내로 구한 것이 왕권찬탈을 위한 계획임을 솔로몬은 즉각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아도니야와 아비아달 그리고 요압이 함께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솔로몬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공적 직무에 따른 명세를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야욕을 읽어내지 못한 어머니의 영적 둔감함에 대해 질타합니다.
어리석은 판단자는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세워진 자는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안녕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대적들을 의로우신 판단을 통해 멸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을 쫒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세움을 받지 못합니다. 어리석기까지 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조차 등한히 여기는 영적인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결코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미혹에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수행하는 자는 무엇을 행하든지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세워지는 신앙의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을 쫒아가는 자는 실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상황 가운데 묻혀버린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 이전글(1월 16일) 불법한자의 최후 = 왕상 2장 26~35절 26.01.16
- 다음글(1월 14일) 신정 통치의 원리 = 왕상 2장 1~9절 26.01.14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하여서는 개인의 사적인 생각이나
욕심이나 탐욕과 불의와 불법등과 타협하는 신앙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려 상황을 쫒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어 버리면 흑암 가운데 빠진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하여 사사로운 일에 미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 편에 세워지는 신앙의 결단력을 가지고
날마다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인의 자세가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애매모호한 상황이 전개되거나
분별력이 흐려져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기도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 삶이 아도니야처럼 상황과 실리를 쫒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실리를 쫒아가는 명분 있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에게 지혜와 영적 분별력으로 상황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아의 청을 들어 아들 솔로몬의 편으로 만들려는 실리를 취하려고 하였지만,
솔로몬은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려는 아도니의 야욕을 알아채리고 신앙의 결단을 내립니다.
지금 나의 상황을 돌아보며
나의 실리에 맞추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봅니다
다시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구하여
이 상황들을 이겨나가는 영적분별력을 가진 승리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