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 = 왕상 1장 40~5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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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화) | 왕상 1장 40~53절 |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 |
1:40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 1:41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 1:42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1:43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1:44 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그들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1:45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무리가 그 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 1:46 또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1:47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1:48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1:49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1:50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1:51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1:52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1:53 사람을 보내어 그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그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
(적용)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아! 이것은 아닌데”라며 자신의 판단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가끔 경험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왕위 찬탈을 기도하였던 아도니야의 부당성과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를 왕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으로 그 정당성을 변론했던 나단과 밧세바, 이들의 호소에 다윗이 드디어 용단을 내립니다. 다윗의 결정은 너무나도 단호하고 신속하였습니다. 당장에 솔로몬에게 기름 붓도록 합니다.
노쇠하여 기력이 완전히 소진된 다윗의 신속한 조치는 주위에 있었던 나단도, 밧세바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윗의 신속한 결정은 아도니야와 솔로몬 그리고 아도니야를 따르던 자들과 솔로몬을 따르던 자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도니야에게 속한 일들이 사람의 뜻과 생각으로 행한 것이라면 솔로몬에 일어났던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일이었습니다. 아도니야와 솔로몬 사건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40~45)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야망과 야합은 패망에 이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자는 세상 가운데서도 높임을 받습니다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야합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번영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대적이 되는 것이 야합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자는 어떤 불리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 대해 그 뜻을 묻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아도니야이라는 다윗 왕국의 실세 앞에 줄은 선 늙은 여우 요압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현실적 상황에 타협하였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비롯한 무리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41절) ‘뿔나팔 소리’와 백성들이 환호에 당황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에 의해 전해집니다.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43절) 소식을 들은 무리는 자신들의 야합이 실패한 쿠데타였다는 것을 알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줄행랑을 칩니다. ‘뿔나팔 소리’가 야망과 권력장악을 위해 혈안이었던 자들에게는 멸망을 알리는 심판의 소리였다면, 사독과 나단 그리고 브나야와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 희망의 ‘뿔나팔 소리’였습니다. 아도니야처럼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야망과 야합은 결국은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 가운데서도 머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우뚝 세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영광으로 받으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6~48)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향해 약속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여 그 뜻을 이루어갑니다
아도니야와는 대조적으로 솔로몬은 나이도 어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다윗의 열 번째 아들이었던 그는 왕자의 서열을 따질 때도 결코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는 누구나 알고 있었던 다윗의 충실한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있는 신하라면 여기에 대해 갈등을 느낄 것은 불을 보듯 빤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할 문제는 솔로몬의 출생 과정과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어떠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다윗이 범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크게 책망합니다. 그리고 공의의 값에 의해 밧세바 사이에 낳았던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큰 슬픔을 겪습니다.
참회개 가운데 세워진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그렇게 해서 출생한 것이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삼하 12:24, 25절)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녀 솔로몬에게로 사람들이 마음이 돌아섭니다. “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47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향해 약속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마음까지 친히 움직여 그 뜻을 이루어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9~53)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지 않았던 권위와 권세는 시드는 풀과같이 허망함이 기다려질 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지 않았던 인본주의 자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49절) 각기 살길을 찾아 도망갑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로는 처참함으로 막을 내립니다. 자신들의 목숨조차 주장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아도니야와 요압은 생명으로 그 값을 지불하게 되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나돗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지 않았던 권위와 권세의 허망함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임하지 않은 권위와 권력, 특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인본주의 노선의 권력은 풀무 불 속에 던져진 허망한 들풀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는 다릅니다. 아도니야의 인본주의를 앞세운 즉위식에도, 솔로몬의 즉위식에도 참여하지 않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던 신하들의 마음이 최종적으로 솔로몬을 향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솔로몬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지 않았던 권위와 권세는 시드는 풀과같이 허망함이 기다려질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적용)
하나님보다 세속적인 권력의 야합을 통해 집권을 노리던 아도니야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요압은 생명으로 그 값을 지불합니다. 그리고 아비아달은 죽음보다 더한 제사장직의 박탈과 함께 유배라는 수모를 겪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지 않은 자들의 권위와 권세는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 가운데 머리가 되게 하고 기둥이 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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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세상에서도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회안의 공동체에서도 성도들과의 교제도 다양합니다
여러 지체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성한 교회이지만
세상의 사고관을 가진 성도들이 신앙과 적당한 타협을 하기도 하고
물질관의 신앙이 교회가 수단이 되기도 하고
교회에 출석이라는 도장을 찍듯이 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역사는 그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올바른 교리와 바른 말씀에 가르침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특히 신앙의 동역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올바른 신앙관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독려하고, 위로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하는 공동체와 성도가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세움 받은 자의 성도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축복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
세상의 야망과 권력과 물질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받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