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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뜻 = 왕상 1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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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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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10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뜻

 

1: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1: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1: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1: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1: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1: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1: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1: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1: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도입)

사무엘서가 이스라엘의 초기 왕정인 사울과 다윗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열왕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솔로몬과 이후의 분열왕국의 역사에 대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열왕기는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열왕들을 열거하고 있는 책입니다.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까지 모두 41명의 왕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왕들의 역사 가운데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지 40년이 되던 해인 B.C 970년경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위의 역사는 처음부터 사울처럼 통합왕국의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 아닙니다. 40년간 왕으로서 그의 통치의 역사는 7년간은 헤브론에서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사울이 죽고 난 후 통일왕국의 진정한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33년간 열두지파의 진정한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인생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다윗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다윗과 대조되는 혈기가 왕성한 그의 네 번째 아들인 아도니야였습니다. 이 두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1~4)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시들고, 사라질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여기서 늙었다는 것은 다윗이 단순히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늙었다는 것은 다윗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그는 골리앗을 이긴 명장이었으며,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시킨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늙었다는 것은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한을 다 살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아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었다는 것은 다윗이 이제 혼자서는 자기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 기력이 쇠진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젊은 목동 시절 사자와 곰을 물리쳤던 다윗 그러나 이제는 연약한 여인에 의지하여 자신의 몸을 가누는 연약한 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잠시 있다가 사라질 건강과 재물은 우리의 영원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잠시 허용된 것에 불과한 것이며, 결코 우리에게 완전한 행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늙었다는 것은 그 또한 죄악 된 인간의 세월이라는 시간 앞에서 맛봐야 하는 인생의 무상함을 맛보았던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참 행복은 세상적인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인생의 마지막 날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힘껏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6) 죄악 된 인간은 자기중심의 세력화를 만들어 가기를 즐겨합니다

 

(5)은 시작을 그때에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새로운 사건의 도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그때에라는 접속사는 (1~4)까지 다윗에 관한 설명은 다윗의 쇠약한 신상을 단순하게 설명한 구절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다윗은 기력만 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노쇠함은 곧바로 국정운영의 공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에’, 다윗의 쇠약한 모습과는 달리 그의 네 번째 아들인 아도니아는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5)라고 하였던 것처럼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군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때에는 이러한 다윗과 아도니아의 양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말하기를 아도니야는 병거와 기병 그리고 호위병 50인을 친위대 세력으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이 더 이상 통치할 수 없는 입장이 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압살롬처럼 거사를 준비합니다. 그는 거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필수적인 군부 세력의 실세였던 요압과 종교 세력을 대표하였던 아비아달과 야합합니다. 한 마디로 완전히 세력을 장악했다는 말입니다. 아도니야는 왕이 되겠다는 야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도니야와 야합하게 된 요압과 아비아달, 그들은 이스라엘 왕위에 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야망에 사로잡혀 하나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세력화로 나라를 만들어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 된 우리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7~10) 하나님 편에 서는 자는 세상적 세력에 동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무혈입성을 자축하며, 스스로 왕이 된 것을 공포하기 위하여 요압과 아비아달 그리고 왕자들과 자신의 모든 동생들 그리고 왕의 신하들을 불러놓고 하나님께 불법을 자행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자신이 왕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초대되지 않고, 가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왕자로서는 솔로몬이었으며, 제사장은 사독이었고, 후에 솔로몬 왕국의 군대 장관을 지낼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 그리고 시므이와 레아와 다윗의 최측근 용사들이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7, 8)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힘의 세력을 쫓아 결집한 요압과 아비아달 그리고 끝까지 다윗 곁을 떠나지 않은 두 분류의 세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는 자는 세상적인 힘의 세력 앞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들 앞에 무릎도 꿇지 않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백성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든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왕이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그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 일은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반드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가 우리 가운데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하게 불리는 것은 지금 나의 영적인 상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교훈을 잊은 아도니야와 같은 자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께 무릎 꿇고 구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모든 일에 있어
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어떠한 일이든지
말씀안에서 일들을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세상의 관점과 세상의 방법과 유익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세상적인 방법이 좋고 화려할지라도
신앙의 관점이 아니면 과감히 단절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의 여정이 아도니야와 같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다윗처럼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하나님께 무릎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다윗과 같은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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