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잊지 말라 = 벧후 3장 8~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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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금) | 벧후 3장 8~13절 | 잊지 말라 |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도입)
세상에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그 종말은 자연적 현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미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언하셨으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이 사실을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베드로가 살고 있던 그 시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두 분류의 큰 오류를 걷고 있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이었으며, 또 다른 한 분류는 극단주의적 종말론을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거짓된 무리들은 거짓과 타락 속으로 성도들을 유인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로 하여금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랄 것을 권면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8)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며 주님의 재림은 역사 가운데 펼쳐지는 시간의 때가 아니라 구원의 수에 따른 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크게 두 분류로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한 분류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급박성을 강조하였으며, 또 다른 한 분류는 주님의 재림을 아예 부인합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급박성을 강조했던 무리는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했으며,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은 주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삶은 자연히 부패하고, 세상적인 타락에 젖어있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종말론이 교회 내에 걷잡을 수 없이 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지며 그때와 시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8절) 주님의 시간이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24시간에 따른 년 수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을 자의 수와 관계가 있습니다. 구원의 수는 이단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십사만 사천 명’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만의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를 말합니다. (계 7:9)은 계시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의 수가 채워지는 때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9)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 때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은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여기에 대해 주님이 빨리 재림하지 않고 ‘오래 참는’ 근본적인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진노를 자제하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요 3:16)은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인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22:14)은 주님의 음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주님의 재림은 심판과 연결이 됩니다. 주님의 재림이 더딘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수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계 6:11)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처럼 느껴집니까? 종말의 심판이 아예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종말의 심판을 알리는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더딘 이유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0~13) 불현듯 임하는 재림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을 통해 앞당겨진다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종말의 날’인 ‘주의 날’이 언제, 어떻게 임할 것인지 가르침을 줍니다. 첫 번째는 ‘주의 날’은 도둑같이 임합니다. 재림은 마치 도둑이 밤에 자신의 집에 몰래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과 같이 임합니다. 두 번째는 천체에 대변화를 일으켜 예고해 줍니다. (눅 12:2)은 ‘그날’에 대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어떠한 요소도 숨김없이 다 드러나고 정리됩니다. 장엄한 심판이 가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여러분들은 영생을 누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런 날이 속히 오길 원하지 않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이런 날을 속히 앞당길 수 있는 두 가지의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룩한 행실’이며, 두 번째는 ‘경건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믿음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행실’로도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약 2:14)의 말씀처럼 믿음은 곧 행실로 그 열매가 나타납니다. 주님의 재림을 속히 앞당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삶이 필요합니다. 전도와 함께 ‘거룩한 행실’, ‘경건함’ 그리고 ‘회개’와 ‘순종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마땅한 삶이며, 이런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은 주님의 재림을 속히 앞당기는 비결이 됩니다.
(적용)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과 함께 믿음을 가지고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코람데오’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전적인 통치 가운데 놓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날’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힘쓰고, 애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처럼, 기름을 예비해 놓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금 이루어지든 십 년 뒤 또는 정말로 천년 뒤에 이루어지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의 시간인 주님의 재림은 시간의 때가 아니라 구원의 수에 있음을 말입니다. 이날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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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주의 날은 알 수 없지만 종말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다시오실 시와 때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구원의 수가 채워지면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수가 차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며
나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행실과
말씀으로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감사의 신앙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듣든지 아니듣든지 오늘도 복음의 씨를 뿌리며
구원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수고하고 땀흘리는 날이 되어
복음의 열매를 맺는 추수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월 17일 전도 대행진 출정식을 위하여
전도자 25명을 세우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전도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