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참된 청지기 = 벧전 5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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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월) | 벧전 5장 1~6절 | 참된 청지기 |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도입)
그리스도인의 참된 가치관 가운데 세워진 자는 하나님께서 위로자가 되어주시고(사 49:13), 피난처와 산성이 되어주고(시 27:5~6), 하나님이 함께할 뿐만 아니라 도와줍니다.(사 43:2) 하나님께서는 교회 가운데 청지기를 세웁니다. 그리고 청지기로 하여금 성도가 고난 가운데 처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하며 도움의 손길이 되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하나님께서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목양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고난에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양 무리를 바르게 목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 무리를 바르게 목양하면 그에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려집니다. 신앙이 초보일 때나 어느 정도 성숙한 때에도 고난은 힘겨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신앙 가운데 세워진 인식의 차이는 여기에 대해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양 무리까지 책임을 져야 할 참된 청지기는 어떤 신앙의 자세로 자신을 무장시켜야 할까요?
(1~4)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돌보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비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영적 지도자를 가리켜 ‘장로 된 자’,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는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교회의 전반적인 일을 관리하는 영적 지도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 때문에 고난받는 처지에 임한 자로서 바울과 베드로 등 진리의 증인들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음으로 안고 달려가는 종말의 신앙 가운데 세워진 자들입니다. 이런 신앙 가운데 세워진 청지기가 양 무리를 칠 때 목자로서 취해야 할 세 가지 필연적인 자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자신이 양 무리를 목양하는 자로 세움을 받았지만 그 양은 주님의 양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니 청지기의 첫 번째 자세는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목양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주장하는 자세를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 무리의 소유권을 누구에게도 넘긴 일이 없습니다. 청지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목양에 대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돌보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비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청지기를 위해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5) 패망의 선봉인 교만과 넘어지게 하는 거만한 마음을 대적하며 순종과 겸손을 가르치며 이를 실천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세워진 청지기는 두 가지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맡겨진 양들을 잘 목양하는 참된 청지기의 역할과 또 하나는 자신의 뒤를 잇도록 양육하는 측면에서의 역할입니다. 청지기는 그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바른 청지기의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잠 16:18)은 증거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베드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명합니다. 교회 내에 세워진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것에 대해 겸손하게 순복하며, 서로에 대해서도 겸손하도록합니다. 보고 배운대로 행동합니다.
‘젊은 자들’은 교회의 다음을 이어갈 자들입니다. 다음을 이어갈 자들이 배운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순종과 겸손과 섬김을 배우지 못한다면 세속적인 방법이 교회 중심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합니다. 교만과 오만이 앞설 것입니다. 교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이라면 거만은 (잠 22:10)의 말씀처럼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미움의 원인이 됩니다. 참된 청지기는 패망의 선봉인 교만과 넘어지게 하는 거만한 마음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순종과 겸손을 가르치며 이를 실천합니다. 이런 참된 청지기에게 수여하는 영광의 면류관은 시들지도 않으며 그 빛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6)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신앙의 모습을 배우고 닮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특별히 더하여 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 아래에 자신을 낮추는 신앙의 모습은 복된 자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능하신 손’이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킨다면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참된 신앙의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신앙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복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함께 담긴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앙 가운데 세워진 자를 “때가 되면 높일 것”을 약속합니다.
“때가 되면!”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카이로스’의 시간 가운데 주인공을 삼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주권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를 말합니다. 멋진 인생을 살아가길 원합니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겸손히 세워진 자는 반드시 높여질 때가 옵니다. (창 41:1)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세워졌던 요셉에게 ‘만 이년’이라는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역동적으로 작동합니다. 옥의 문의 열리고, 애굽 총리지만 마치 왕과 같이 다스리는 자리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참된 청지기는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참된 청지기의 모습이 되기까지 먼저 배움의 자리에 세워집니다. 어머니 한나로부터 품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한나의 순종과 겸손, 섬김을 통해 배웁니다. 참된 청지기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의 모습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과 겸손, 섬김에 대해 진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면 다음 세대에게 이것을 잘 가르치는 사명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참된 청지기를 위해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런 참된 청지기를 반드시 높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는 신앙으로 힘 있게 달려가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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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다스림 앞에 순복하는 신앙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른 신앙관으로 바른 말씀안에서
청지기와 같은 신앙의 길을 걷는 성도가 되어
공동체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
기쁨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