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자인가 = 왕상 7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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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월) | 왕상 7장 1~12절 |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자인가 |
7: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7: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7: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7: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7: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7: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7: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7: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7: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7: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7: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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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째인 B.C. 966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약 7년 반 정도의 공정 기간을 거쳐 B.C. 959년 드디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인 성전을 완공하게 됩니다. 이런 솔로몬은 통일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왕이 됩니다. 초기의 솔로몬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진 연약한 모습의 왕이었습니다. 이런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것이 ‘일천번제단’에서의 솔로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잘 다스리도록 그에게 지혜의 영을 부어줍니다.
성전 건축을 통해서도 나타났던 것처럼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관점’으로 하나가 되어 왕의 지시에 모두가 하나같이 움직이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의 어떠한 나라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강력한 나라로 부상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 정도 되면 교만해지기 쉽고, 자아 중심의 판단과 함께 스스로를 위대한 모습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지혜와 함께 부와 영광이 자신 앞에 놓여 있었던 솔로몬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위한 왕궁이 아니라 성전을 먼저 완공한 다음 왕궁을 건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에 따른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1~8) 자신에게 있을 유익함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초기의 솔로몬은 무엇을 행하든 ‘하나님의 왕국’을 먼저 생각하는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솔로몬 정도의 세력이 다른 왕들에게 있었더라면 그 왕은 자신의 왕궁을 최우선하여 건설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과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성전 세우는 일을 먼저 돌아봅니다. 솔로몬의 이런 자세는 사람의 일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이었으며, 하나님이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드디어 왕궁을 짓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그 기능에 있어서 성전과 분명히 다른 기능을 가진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왕궁은 다른 세상적인 왕궁과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이었으며, ‘언약적 관점’의 왕궁이라는 점입니다. 왕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심장부로서 그 크기는 길이가 ‘백규빗’으로 성전의 길이보다 ‘사십규빗’이나 더 컸습니다. 너비는 ‘오십규빗’으로 성전보다 ‘삼십규빗’ 컸고, 높이는 성전과 동일한 ‘삼십규빗’의 크기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골방들을 떠받치는 기둥은 45개로 그 규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왕궁은 여러 기능을 가진 곳임으로 그 규모 또한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왕궁을 먼저 짓지 않은 것은 하나님은 항상 앞서 계신 분이라는 것과 자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왕궁이 성전에 인접해 있다는 것은 왕궁이 성전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왕궁 앞에는 재판할 수 있는 ‘보좌의 주랑’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7절) 이것은 솔로몬 왕궁에 대한 기능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왕궁의 기능은 왕은 하나님을 향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똑바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웅장한 왕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던 솔로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하며 달려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같이 영광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동일한 은혜가 있기 소원합니다.
(9~12) 한순간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의 연 한이 다할 때까지 또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끝까지 일하는 언약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했던 솔로몬을 향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그에게 덧입혀줍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위에 세워진 솔로몬 왕궁은 하나님의 구속적 관점에 의한 하나님의 부속됨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그가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8절)라고 성경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집’에 관하여 말합니다. 집들은 모두 희귀한 돌들로 장식되었으며, 그 뜰 주위에 놓인 돌과 백향목의 판자는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12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른 첩들과는 달리 애굽 왕의 딸을 위해 구별된 궁을 지어줍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가장 큰 실수가 됩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관점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애굽 왕의 딸을 위해 구별된 궁을 지어준 것은 이방 종교를 가지고 있는 아내들을 위해 별도의 궁을 지어주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은 이것이 왕국이 분열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솔로몬은 알지 못했습니다.
언약 백성은 어떤 순간도 자신을 돌아보며 일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함께 돌아보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결국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였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하는 언약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기만 하십시오!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의 자세입니다.
(적용)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나는 어떻게 자신을 세워나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관점에 세워진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언약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시면서 죽기까지 절대 순종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자신에게 있을 유익을 먼저 돌아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회용이 아니라 생명의 연한이 다하는 그날까지이며,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때까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관점에 대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벗어나면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모두 곁길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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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의 관점과 언약적 관점에서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보다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귀와 유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나아갑니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자인가?"를
깊이 묵상하며 나를 돌아보며
지금 나의 신앙의 자세는 어떠하며
앞으로의 나의 신앙의 자세는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언약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절대적인 순종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하는 언약적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워진 청지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왕궁보다 성전을 먼저 건축했던 솔로몬의 신앙이
무너지게 된 솔로몬의 선택을 묵상하게됩니다
'이쯤은 괜찮겠지..' 내안에도 이런 생각과 선택들이
물 밀듯이 찾아옵니다.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며
회개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세우며
어떠한 경우에도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도록
분별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