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거짓된 유혹 = 왕상 13장 11~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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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토) | 왕상 13장 11~19절 | 거짓된 유혹 |
13: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3: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3: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3: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3: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3: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3: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3: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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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길을 자초하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을 향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나님의 사람’을 북이스라엘의 ‘벧엘’로 보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다라는 일념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즉각적으로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에는 절대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순종의 길을 걸었던 ‘하나님의 사람’이 한순간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자기의 길을 버렸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베드로에게 접근하였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이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11~12) 자신의 권익과 물질관에 눈이 어두워진 거짓된 자는 고난이 있는 하나님의 길을 결코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3장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과 여로보암의 대조를 통해,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전’이 있는 남유다 출신이요, ‘늙은 선지자’는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며, ‘성전’을 대신하여 ‘산당’을 세운, 영적으로 병들은 벧엘에서 활동하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에 반대하여 남하했던 다른 제사장들과 달리 물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벧엘에 남게 된 제사장으로서 도덕성이 훼손된 자였습니다. 이런 선지자의 아들들이 벧엘의 ‘산당’에서 있었던 놀라운 사건들을 아버지에게 전합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라 움직이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권익과 물질관에 사로잡혀 고난의 있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인본주의적인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늙은 선지자’와 같이 믿음이라는 가면을 쓴, 영적으로 타락한 주인공이 ‘네’가 아니라 ‘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람’처럼 외치고 있는데 왜! 세상은 더욱 타락의 극치를 달려가고 있을까요? ‘늙은 선지자!’, 그것도 벧엘에 거하던 이 시대의 ‘늙은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봅시다!
(13~14) 공중의 권세를 잡은 거짓된 자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영적 경계의 끈을 항상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늙은 선지자의 아들들은 유다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가 어떠한 길로 돌아갔는지 자세히 말합니다.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13절)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자 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향력보다 남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영향력이 지대할 경우 자기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음을 직감합니다. 이 일을 급히 수습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납니다.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14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한 후, 남유다로 곧장 향하지 아니하고 벧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기념의 장소’요, ‘죽은 사람을 묻는 장소’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수리나무는 특히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는 곳입니다. 자신을 노출하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9절)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속히 벗어나야 할 저주와 우상숭배의 땅인 벧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연약한 우리의 부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만하면 되었어!’, ‘이제 잠시 쉬도록 해!’라며 영적 긴장의 끈을 풀어놓게 한 다음 무장해제 상태에서 늙은 선지자와 같은 자를 내세워 미혹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전히 감당하는 날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하나님을 향한 그 푯대만을 바라보고 영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5~19) 거짓된 자는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혹의 도구로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사탄의 졸개였던 늙은 선지자가 ‘휴식할 집’과 ‘먹을 양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미혹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비장의 무기를 끄집어냅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18절) 이어서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18절)이라고 미혹합니다.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을 미혹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자신의 제의를 따르도록 설득합니다. 늙은 선지자가 사탄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는 역할자로 사용됩니다.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19절) 하나님의 사람이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을 속히 떠나도록 한 것은 늙은 선지자와 같은 ‘미혹의 영’이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혹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돌이켜 봅시다. 이단들은 기존의 교회와 별다른 차이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계시를 통해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세속적인 축복을 통한 거짓된 약속으로 다가서는 거짓된 자들을 향해 영적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은 미혹된 도구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도구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없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언제나 ‘아멘!’하며, 그 길을 따라야 할 자들입니다. 그러니 거짓된 자들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영적 전투 현장에서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험악한 영적 전투 현장에서 승리하도록 아주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순한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입니다. 거짓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뤄집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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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바른 말씀과 바른 신앙관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입니다
간교한 마귀는 언제나 거짓된 말씀,
거짓된 유혹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합니다
마귀의 거짓된 말씀과 거짓된 유혹에 내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 방심하는 신앙은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은 온갖 방법으로 유혹을 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담대하게 전하는 신앙이 되어
진리의 그 말씀을 전하며 선포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