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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인본적인 판단이 불러오는 거짓 신앙 = 왕상 12장 25~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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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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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왕상 1225~33

인본적인 판단이 불러오는 거짓 신앙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 가리로다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 가리로다 하고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도입)

성전 건축은 솔로몬의 통치 기록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과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라는 하나님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밝히셨던 것처럼 다윗 왕조의 영원함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의 표현이 새겨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유다는 르호보암이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각각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남유다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그대로 수도로 삼았으며, 북이스라엘은 북쪽 지파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였던 세겜을 수도로 삼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왕위는 자신의 능력과 군사력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권력을 잡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큰 죄악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의 인본적인 판단은 하나님을 향한 눈을 멀게 하였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큰 죄악에 빠져드는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여로보암의 인본적인 판단은 자신과 백성들로 하여금 어떤 신앙의 길을 걸어가도록 했을까요?

 

(25~27) 인본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일에 전력하며 달려가게 만듭니다

 

사람을 통솔하는데 남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던 여로보암이 북쪽 지파 왕으로 추대됩니다. 자신의 통치권 강화를 위하여 세겜을 북이스라엘의 초대 수도로 삼고, ‘세겜성을 건축합니다. 그리고 수도 세겜성을 방어하며 적들로부터 길르앗을 보호하기 위해 부느엘을 건축합니다. 특히 부느엘은 다메섹과 암몬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여로보암은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왕으로 비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모습에서 발동된 것이 아닙니다. 인본적인 판단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북쪽 지파를 대표하는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제일 먼저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들려줬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인본적 판단 속에 나라를 돌아봤던 그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는 북쪽 사람들이 절기 등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문제였습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 가리로다 하고”(27) 인본적인 판단은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데 혈안이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인본주의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다 보니 왕국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관점에서 비춰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나의 왕국을 세우기에 근심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본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일에 전력하며 죄악 된 길을 달려가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8~30) 인본적인 판단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왜곡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짓된 신앙을 만들어내는 일에 전력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걸음을 인위적으로 막는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일이 없도록 두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대신할 장소를 선택합니다. 또 하나는 남쪽과 다른 일기 차이를 이용해 절기를 북쪽의 조건에 맞춰 변경시킵니다.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최남단인 남유다와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장과 28장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곳에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성읍입니다. 사사시대에 단지파에 의해 신당이 세워졌던 곳입니다. 고심하던 여로보암이 두 성읍을 결정합니다.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게 합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28, 29)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여로보암의 인본적인 판단은 최악의 길을 만들어냅니다. 영적 타락을 만들어내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왜곡되게 걷도록 만듭니다. 불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인본주의적 판단은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왜곡된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왜곡된 신앙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두를 거짓된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죽음의 독가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만들어버리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1~33) 인본적인 판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두 금송아지우상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며 말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서 백성들 하여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이런 일들이 자행됩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행위는 절기의 날짜까지 바꿔 하나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별도의 이스라엘을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상실한 가운데 이런 일들이 자행됩니다.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33)

여로보암은 산당들을 짓고 자신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일반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 계열을 제사장 삼도록 명령한 영원한 규례(29:9)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인본적인 판단이 무서운 짓을 두려움 없이 행하도록 만듭니다. 여로보암의 이런 결정은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속마음을 읽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긴밀하게 작동했던 전형적인 인본주의적 판단에 의한 조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여기에 동화됩니다. 참 신앙의 소유자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계산하며,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인본적인 판단에 자신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용)

인간적인 열심과 신앙은 다릅니다. 인간적인 열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바라보게 되면 참신앙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주관과 편견에 의한 신앙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보다 자신을 하나님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이런 인본적인 판단이 불러오는 신앙은 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을 시키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거짓된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사탄은 인본적인 타협점을 찾게 만들며, 합리적인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인본적인 판단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혼합 종교화시키려는 사탄의 능력입니다. 인본적인 판단이 불러오는 거짓 신앙에 빠져들지 않도록 나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허락하신 곳이므로
여로보암의 처음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었으나
여로보암은 점점 변질되어 북이스라엘에 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믿도록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처음 신앙의 모습대로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묵상하면서
다시한번 나의 신앙을 돌아보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관습처럼 따르는 신앙이 아닌지
주일이니까 교회를 가야되는 것 처럼
의무적인 신앙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어제의 뜨거운 신앙이 오늘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날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오늘도 인본주의의 신앙이 되지 않기 위하여
말씀이 삶이 되도록 날마다 날마다 기도하며
말씀가운데 나를 쳐서 복종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인본주의의 신앙, 거짓된 신앙으로 잘못 된 신앙의 모습에
빠져들지 않도록 오늘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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