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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세속화의 길 = 왕상 9장 10~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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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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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910~28

세속화의 길

 

9: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9:11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9: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9: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9:14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9:15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9: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9: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9:18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9: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9:20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9: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9:22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9:23 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9:24 바로의 딸이 다윗 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9: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

9:26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9: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9:28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도입)

국가의 최고 통치자또는 군주,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가리켜 이라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의미로 말을 하자면 군림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세속적인 왕의 개념인 군림하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나, 우두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방 나라의 왕들이 가지지 못하는 세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자였습니다. 두 번째로 율법에 관해 분명한 내용들을 알고 있어야 했으며, 그것을 지키는 데 있어서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건의 재판을 맡았을 때 율법에 근거한 지혜 있는 판결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세 번째로 약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정의를 베푸는 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방 나라의 왕들과 다른 면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신명기의 언약의 양축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의 순종이라는 언약의 양축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약의 양축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인본적 관점이 되어버린다면 양축은 무너지게 됩니다. 자기중심의 인본적 관점에서 나타나는 세속화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세속화는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역행하게 만들까요?

 

(10~14) 어떤 명분도 세속화를 앞세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히람은 두로인 아버지와 납달리 지파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놋 세공 전문 기술자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초청으로 성전 건축에 심혈을 기울였던 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히람은 두로 땅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이방 나라의 왕이었지만 여호와의 성전을 세운 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줍니다.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11) 그 규모가 금만 일백이십 달란트’(왕상 9:14)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장정 노예 18만 명의 몸값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차관의 규모가 대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솔로몬이 백향목잣나무그리고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차관하면서 상환에 따른 조건은 이었습니다. 두로 왕은 여기에 대해 대단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눈에 들지 아니하여”(12) “가불 땅이라”(13)

가불은 고대 페니키아에서 온 말로써 무가치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릴리 성읍의 20개는 히람 왕이 제공한 차관의 원금에도 못 미치는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그 땅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기에 부족한 형편없는 땅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차관할 때 약속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제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솔로몬은 자신의 유익만을 계산한 불공정한 거래자였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 대해 불법을 자행합니다. 아무리 명분이 훌륭해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신앙의 초심이 무너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난 사건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지혜는 공평성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중심의 사고를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5~23) 세속화는 말씀의 성이 아니라 외형적 힘의 성을 쌓는 일에 전력을 다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나머지 업적들을 설명하면서 역군이라는 특이한 단어를 15절에서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단어로써 왕이 백성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장면입니다. 초심의 모습과는 달리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로 힘이 집결될 수 있는지를 골몰하는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중앙집권적인 권력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솔과 므깃도와 같은 곳에 군사적 전략요충지를 세웠으며, 애굽과 전략적 외교관계를 위해 정략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전역에 건축공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22)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솔로몬의 야망을 세우는 일에 하나같이 목적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속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는 것보다 외형적 세력의 탑인 높은 성을 쌓는 일에 전력을 다하게 만듭니다. ‘높은 성많은 실적의 성을 쌓는 것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4~28) 세속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속적 관계 형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만듭니다

 

세속화는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버린 무서움의 결과를 숨기고 있습니다. 세속화는 주변과 관계 강화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종교적 관행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아니라 물질만능주의로 바꿔버리는 영적 흑암을 낳습니다. 자신이 이런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세속화의 특징입니다. 세속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었던 솔로몬이 애굽 왕의 딸을 위해 을 지으면서 종교적인 일에도 열심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인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은 애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홍해 물가인 해상 통상의 중심지 에시온게벨에서 애굽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배를 건조하는 데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에게 모든 행복을 가져다줄 것만 같지만 샬롬이 없는 상태에서는 풍요 속에서 또 다른 부족함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만족을 채우기 위해 세속의 또 다른 노예의 모습을 하고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속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자신을 세속의 노예로 만들어가는 사탄의 가면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세속화는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형식적인 관계에 두게 만드는 악의 잔재입니다. 하나님을 실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세속화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사탄의 무서운 전략적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을 쌓는 일에 전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외형적 힘의 성을 쌓는 일에 전력을 다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의 순종이라는 언약의 양축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진 자입니다. 이런 왕조차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외형지향주의라는 세속화에 눈이 돌리게 만듭니다. 세속화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력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처음 신앙의 순수함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자세를 하여야합니다
그러나 재물과 권력 앞에서는 초심보다는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적으로 변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솔로몬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왕이지만
솔로몬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강화하고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등
솔로몬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세속적으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신앙의 모습이 세속화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 역시도 세속에 물들을 때도 있었고
작은 재물에 교만이 싹트기도 하였고
세상의 잘난 맛에 기울일때도 있었지만
나의 삶의 방향과 나의 모든 것의 길은
오직 여호와를 향하여 달려가는 신앙밖에 없음을 알기에
오늘도 세속화에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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