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 = 왕상 20장 31~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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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월) | 왕상 20장 31~34절 |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 |
20: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20: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20: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20: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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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두 방향에 대한 인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길과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면서 걸어가는 길입니다. 아람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제2차 승리는 아람의 철저한 준비와 재무장을 바탕으로 한 전투로써 이스라엘의 객관적인 승률은 완전히 0%였던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가 앞장선 이 전투에서 아람 군대는 초토화됩니다. 전쟁을 치루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은 아합에게 이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의하여 마치 농부가 추수하듯 이스라엘에게 승리가 돌아갈 것을 전해 듣습니다. 말씀대로 여호와의 능력으로 말도 안 되는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아람과의 전쟁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전투는 누가 싸워 이긴 전투입니까?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 전쟁의 승리에 대한 영광은 누구에게로 돌려야 합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이 전쟁에 대한 사후 조치와 그 결정에 대한 권한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질문에 대해 동일한 답변이 성립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방향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아합처럼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31~32)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공의보다 그릇된 긍휼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첫 번째 전투의 설욕을 위하여 ‘우기’가 끝나는 봄을 기다리며 벤하닷은 자신의 군대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그러나 결과는 북이스라엘의 대승으로 전쟁은 종결을 짓게 됩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완전히 포위된 벤하닷은 이 전투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개구멍’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벤하닷은 자신의 생명을 아합 구걸하는 신세가 됩니다. 신하들은 ‘굵은 베’로 허리를 묶는 참회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아합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벤하닷의 생사가 아합의 손에 달려있음을 선언하며 완전한 굴종의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32절) 이때 아합의 입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말이 나옵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32절)
아합은 자신과 이스라엘을 조롱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능멸했던 벤하닷을 진멸하고, 처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벤하닷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보자 우쭐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내 형제이니라”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그르치는 가운데 행해지는 긍휼과 자비는 하나님을 향한 범죄행위가 됩니다. 죄인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선결이 아니라 먼저 회개가 필요합니다. 나의 너그러움을 앞세운 ‘가식된 자비’가 아니라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진정한 자비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보다 자신의 그릇된 긍휼을 중요시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하나님 나라의 도둑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패망의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3)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자신을 높이는 불신의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32절)라는 아합의 말을 벤하닷의 신하들은 놓치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합니다. “벤하닷은 왕의 형제이니이다”(33절) 벤하닷의 신하들은 아합왕에게 자비와 용서를 구했을 때 아합이 자신들에게 이렇게 쉽게 반응할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합은 포로와 다를 바 없는 벤하닷을 중간에 놓고 자신의 입장을 저울질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 양 진영을 향해 자신은 벤하닷과 동등한 왕권으로 세워진 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자신은 벤하닷과는 달리 너그럽기까지 하여 곤란에 처한 자에게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는 위대한 왕임을 선포합니다. 벤하닷의 신하들의 아첨하는 소리에 아합은 더욱 우쭐해집니다.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33절)
아합의 배려는 자기중심의 배려였습니다. 그의 배려 속에는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야심적이었고, 탐욕적이었으며, 불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배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불신의 세상을 더 사랑하였고, 갈망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다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높임을 받지 못하는 길입니다. 또 다른 한 길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높임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의 길을 팽개치고 달려가는 길입니다.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자신을 높이는 불신의 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행여 이런 비참하고,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가 ‘내’가 아닌지 돌이켜봅시다.
(34)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세상의 힘과 재물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아합 왕은 벤하닷을 형제로 받아주고, 그를 자신의 병거에 함께 오르게 하는 등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줍니다. 그 대가로 벤하닷은 자신의 선조 때 빼앗았던 이스라엘의 영토를 되돌려주고, 다메섹에서 아합 왕을 위한 대로를 만들 수 있도록 조약을 제시합니다.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34절) 벤하닷은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인 아람의 ‘다메섹’을 아합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제공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합은 겉으로는 승자의 아량을 베푸는 정책을 펼쳤으며, 속으로는 지혜로운 실리적 외교를 펼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둡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아합의 점수는 낙제였습니다. 아합은 벤하닷과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정면으로 파기하는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아합은 다메섹에 있는 상업용 공간과 거주지를 비롯한 일련의 장소를 제공받습니다. 그 결과 아람의 다메섹을 통한 무역로가 활짝 열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를 이끄시고, 나를 이곳에 서게 하신 그리고 여기까지 나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승리의 깃발 삼아주신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서 아람과의 말도 안 되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 것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더불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는 아람의 힘과 경제적가치의 기준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제물을 바라봅니다. 아합과 같은 그릇된 것을 선택하는 자는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어리석은 자임을 잊지 맙시다.
(적용)
지금까지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릇된 자신의 자비와 긍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리는 자는 소망과 희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두 길인 ‘사망’과 ‘생명’의 길 가운데 영원한 죽음의 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아합처럼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자신을 높여주고, 자신의 가치를 세워주는 일이라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자신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헛된 세상의 재물보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죄악과 타협을 하는 순간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죄악의 뿌리는 자라나서 반드시 그 자신을 삼켜버립니다.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자입니다. 패망의 길을 달려가지 않도록 인본적인 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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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아람군대가 승리할 것 같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막강한 아람의 군대는 여호와의 능력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패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패망의 길을 달려가는 자는 자신의 욕심과 탐욕과 불신의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에 그들은 소망이 없고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고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병행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나를 하나님 중심에 서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의 걸어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점점 세상은 악해져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죄악된 것을 끊어버리고
하나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도 말씀 배우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말씀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되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