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여호와를 향하여 = 왕상 15장 9~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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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목) | 왕상 15장 9~24절 | 여호와를 향하여 |
15: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5: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5: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5: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5: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5: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5: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5: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5: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5: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15: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15: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15: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15: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15:24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도입)
인류의 역사와 종교는 분리가 아니라 함께 흘러가고 있는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알리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써 내려가는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예정하심 가운데 이루어지는 ‘섭리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들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며, 이스라엘만의 주관자가 아니라 ‘온 세상의 주관자’입니다.
B.C. 910년 이스라엘을 3년간 통치한 아비얌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는 남유다를 41년간 다스립니다. ‘선한 왕’, ‘개혁의 왕’이기도 했던 아사의 출발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습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굳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맹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14절) 그는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침공을 막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남은 은금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는 치명적인 일을 범합니다. 아사 왕의 신앙과 관련한 전과 후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조명해 주고 있을까요? 여호와를 향하여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할까요?
(9~13) 여호와를 향해 힘쓰고 애쓰는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의 주변과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사는 아버지가 일찍 죽자 그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어린 아사를 왕위에 올려놓고 르호보암의 아내요, 그의 아버지 아비얌의 어머니였던 할머니 마아가가 ‘섭정’을 합니다. 아사의 친모가 일찍 죽자 마아가가 그를 아들처럼 키웁니다. 그것을 가리켜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10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남달랐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비얌의 신앙을 닮은 자가 아니라 그의 조상 다윗을 닮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비얌과 그의 할머니가 행하였던 종교 행위와 우상에 관한 것을 척결합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냅니다. 심지어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보고 있었던 할머니 마아가의 우상숭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폐합니다. 그리고 우상의 집결지를 불태웁니다.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13절) 솔로몬 이후 성행했던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아스다롯과 밀곰, 그모스 신 등을 상징하는 우상들을 척결합니다. 만약! 아사가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이런 일들을 진행하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이 일들을 행했다면 그는 오히려 역풍을 맞았을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이 일들을 감당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생각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변과 환경을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날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14~22)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이며, 변함없이 끝까지 달려가야 할 신앙입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제도를 바꾸는 개혁만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아사에게는 넘지 못한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산당’이었습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14절) 불신앙의 근원을 완전히 자르지 못하고 ‘이만하면 되었어!’라고 할 때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올무가 됩니다. 아사가 나라를 다스릴 때 북이스라엘의 바아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백성들의 마음과 발길을 막기 위해 ‘라마’를 건축합니다. 바아사의 야망 앞에 불안했던 아사가 긴밀한 선택을 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에게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보냅니다. 그리고 동맹관계를 요청하면서 북이스라엘을 무찔려줄 것을 간청합니다. 군사적 위협 앞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힘을 선택합니다.
아사는 성전과 왕궁의 두 곳간에 있는 것을 이방 나라에 받침으로 여호와를 모독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항상 나를 인도하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속적인 관습과 염려로 인해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속의 그리고 나의 삶에 ‘산당’과 같은 것이 있다면 ‘여호와를 신뢰하는 신앙’으로 과감히 던져버리십시오. 어떤 순간도 하나님만의 통치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23~24)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전인격적이어야 하며 이것이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해야 합니다
한 번 반짝하는 제도적인 종교개혁으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이르는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신앙이 이루어지질 않으면 언제든지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올라와 나를 믿음 없는 모습으로 바꿔버립니다. 북이스라엘 바아사를 아람 왕의 힘을 빌려 제압한 아사는 왕으로서의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며, 권좌를 누립니다. 구스와의 전쟁을 신앙으로 승리하는 등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의 말년은 초기의 모습과 달리 영육이 병들은 모습을 합니다. 그의 통치 39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지금의 통풍과 같은 병으로 고통의 세월을 살다가 그 통치 41년 그의 생을 마감합니다.
선견자 ‘하나니’가 아람 왕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으로 이 난국을 이겨 나가도록 하지만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하나니’와 같이 행하는 백성들을 학대합니다. 그 징계로 3년 뒤 아사는 극심한 ‘통풍’에 시달립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를 찾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상황과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는 변함없는 인격적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동일하다는 것은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라는 인격적 고백이 함께하고 있는 신앙을 말합니다.
(적용)
인생을 얼마만큼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가장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호와를 향해 힘쓰고 애쓰는 신앙,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 그리고 여호와를 향하여 언제나 변함없는 동일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날까지 지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나의 신앙은 나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오늘도 이런 주님이 나를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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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남유다를 41년간 다스렸던 아사는 각종 우상들을 척결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굳게 세워졌습니다
처음의 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여호와를 향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인가를 다시 깨닫습니다
신앙은 타협과 허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나의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쓴뿌리도 제거하고 아주 작은 우상적인 요소들도 다 제거하고
세상의 것들도 다 제거하여
오직 여호와를 향하는 나의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신뢰하며
여호와를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는
절대적인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신앙은 오직 야호와를 향하는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역사의 중심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류의 역사와 종교는 함께 흘러가듯
개인의 역사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함께 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장벽이 너무 높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많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그 장벽이 왜 그리 높고 험난해 보였을까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결국 말씀을 지키는 것인데
주변의 환경을 정리하지 못하게 되면
말씀을 지켜 순종하기가 더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만 하면 됐다'라고 여기며
불신앙의 산당을 없애지 못하고
멈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 해 봅니다.
그리고
내 삶의 역사를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끝까지 함께 할수 있도록
막막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