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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 왕상 20장 35~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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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4()

왕상 2035~43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20: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20: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20: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20: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20: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20: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20: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20: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20: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도입)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아합은 승리에 도취 되어 하나님의 뜻과 달리 벤하닷의 항복 조건을 수락합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가 자신의 결정과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합니다. 항복 조건을 제시하는 벤하닷을 형제로 여기며 자신을 더욱 높이는 일에 벤하닷을 이용합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벤하닷에게 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자신의 군사적,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길을 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주면서 아합을 지켜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의 침공과 아람을 향한 승리라는 양날의 도구를 사용하여 아합을 일깨우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함에도 아합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내 형제라고 반응합니다. 이런 아합 앞에 한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가로챈 아합,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자를 형제라고 외치는 아합을 향해 한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줍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셨을까요?

 

(35~37)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인본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했던 그 기준점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할 뿐만 아니라 멸망의 길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 생도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 아합의 불순종에 따른 죄악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35)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 생도의 행위 예언으로 장차 아합에게 일어날 강력한 사건을 예언하도록 합니다. (36)치다라는 뜻을 가진 나카라는 동사는 죽이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선지 생도가 그의 친구에게 치라라고 명한 것은 그냥 살짝 건드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명령에 응하지 않은 동료가 사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그 생도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나를 치라”(37) 상대가 부상을 당할 정도로 매우 세게 칩니다. 말씀에 순종했던 그는 앞선 동료와는 달리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쳐라!’라는 것에 대해 인간적인 판단으로 거부했던 생도의 친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선지 생도의 비유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판단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을 판단하는 교만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을 쫓아가는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인간적인 이해와 판단을 통해 자신이 그 기준점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도리와 상식을 넘어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8~40)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그 말씀을 비춰보는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선지자는 마치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드러낼 때처럼 아합에게 접근합니다.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38) 변장한 선지자가 왕이 지나갈 때 큰 소리로 호소합니다. “내가 전쟁 중에 포로를 감시하다가 그 포로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그 포로를 내가 놓아준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그 포로를 놓쳐버렸습니다.” “내가 그 포로 대신 죽거나 은 한 달란트인 노동자 6,000명에 해당하는 돈을 내놓아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돈이 없습니다.” “정말! 악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아합은 말합니다.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

전쟁 중의 포로는 아합이 자신과 국익에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조약을 채결하고 풀어준 벤하닷이었습니다. 변장한 선지자가 아합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42)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사로운 이해와 판단으로 공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벤하닷을 놓아줍니다. 여기에 대한 아합의 판결은 그 목숨을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은 언제나 나에게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아합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정확하게 잣대를 대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그렇게 적용하기를 꺼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그 말씀을 비춰보는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1~43)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오만함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생명으로 속전을 받게 됩니다

 

포로된 자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병사에게 엄벌을 내릴 것을 아합이 판결한 순간 선지자는 재빨리 얼굴을 감쌌던 천을 풀어 해칩니다. 아합은 깜짝 놀랍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벤하닷을 놓아준 것에 대해 아합은 자신의 생명으로 그 값으로 드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아합의 모습은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43) 아합은 이 일이 있은 후, 3년 뒤인 B.C. 853, 아람과 제3차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때의 1,2차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합은 (왕상 22:34)에 의하면 자신이 풀어준 벤하닷과 길르앗 라못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생명이 거두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과 이룬 것, 이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합처럼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오만하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이룬 것처럼 가로채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자는 아합처럼 그 생명으로 그 값을 대신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앞에 서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나는 작은 자요, 진실로 나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능력과 방향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합처럼 하나님 앞에 오만하게 서는 자는 소망과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그 값을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수용할 수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말씀을 따라 준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나라와 민족이 정말! 똑바로 서가길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먼저 준행하며 그 효력이 발해지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아합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벤하닷에게 관용정치를 베풀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아합
여전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지 못하는 아합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점검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에 순복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아합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신앙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말씀에 벗어나는 삶이 아닌지를
날마다 돌아보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그 어느것 하나 나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로
오늘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능력과 방향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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