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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객관적인 판단과 위선 = 왕상 20장 10~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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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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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왕상 2010~21

객관적인 판단과 위선

 

20:10 그 때에 벤하닷이 다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20:11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20:12 그 때에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매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

20: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20:14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20:15 아합이 이에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명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명이더라

20:16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20:17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20:18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20:19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

20:20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20:21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도입)

B.C. 857년 아람 왕 벤하닷 2세는 32개의 군소 부족 국가를 하나로 연합하여 근동의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합니다. 그는 세를 몰아 근동 지역의 영주로 자리를 잡기 위해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이 싸움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전략적으로, 실전적으로, 아람의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1:1’의 싸움이 아니라 ‘321’이었습니다. 싸움에 능수능란한 ‘32개의 연합국군사들과 북이스라엘과의 대결은 객관적으로 볼 때, 불을 보듯 빤한 결과가 기다려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왕은 우는 사자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아람의 벤하닷 왕 앞에 섭니다.

객관적인 상황으로 볼 때 아합과 북이스라엘은 죽은 존재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 가운데 기가 막힌 한 사건이 연출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자신 앞에 빤한 결과가 나와 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상황에 굴복하고 타협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여기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0~12) 상대의 위선 앞에 자신도 허풍으로 맞서는 자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비밀병기로 그 상황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봉신 관계에 따른 추가 제의에 왕권국권이 모두 상실될 위기에 놓인 아합은 갈 바를 알지 못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장로들을 소집합니다. 이때 장로들과 백성들의 결정은 결사 항전이었습니다. 이래도 노예로 전락하고, 저렇게 해도 노예로 전락하는 마당에 굴종적인 모습이 아니라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편이 났다는 판단을 하고 결사 항전을 선포합니다. 벤하닷은 이런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사마리아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일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 뜻을 천명합니다. 벤하닷의 모습은 객관적인 위선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그의 위선이 어느 정도였는지 (왕상 20:12) 상반절은 그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임한 벤하닷은 32명의 연합 왕들과 장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객관적 판단에 따른 위선 그 자체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벤하닷에게 대등한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풍으로 맞선 아합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계속된 화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벤하닷에게 대항합니다. “전쟁을 해보지도 않고 마치 자신이 승리자인 것처럼 오판하지 말라!” 아합의 허풍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용맹스러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허풍은 감정적이었고, 촉각을 앞세운 허세였습니다. 우리는 문제 앞에 객관적인 위선으로 서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 앞에 어떻게 되겠지!’라는 요행으로 서는 자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우리의 모습이 상대가 볼 땐 상대조차 되지 않는 존재라 할지라도 스스로 비밀의 병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비밀병기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승리로 장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3~15) 진정한 승리는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힘과 능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아합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과 뜻을 같이할 장로들을 먼저 찾습니다. 그때 장로들의 결정은 ‘‘결사 항전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장로들의 어리석은 결정 뒤에는 백성들의 희생만 기다려지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대학살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냅니다.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13) 다급해진 아합은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14) 절박한 상황의 아합은 한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는 아람과 전쟁에 나갈 군사에 관한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전쟁에 나갈 군사를 지휘할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답은 전쟁에 나갈 군사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정예부대의 수는 고작 ‘232이었습니다. 그리고 칠천 명의 군사였습니다. 두 번째 답은 군사를 지휘할 장수는 아합 자신이었습니다. (왕상 20:29)에 의하면 상대는 보병만 최소한 ‘10이 넘는 대군이었습니다. 이런 대군과 싸우기 위한 군사의 수가 ‘7,232이었습니다. 아합이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여기서 아합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힘과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상 17:47)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진정한 승리는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힘과 능력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6~21)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기회주의자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의 결단으로 승리를 거두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합은 전력상 절대 열세의 병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섭니다. 일반적인 병법에 의하면 자신의 병사의 수가 중과부적일 때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우선을 둬야 합니다. 공격은 방어보다 위험하여 상대보다 갑절 이상의 병력 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던 아합은 하나님께서 명한 말씀을 따릅니다.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16) ‘7,232의 병사를 거느리고 저녁에 기습작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눈에 가장 잘 뜨이는 대낮에 전투에 임합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자살 행위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벤하닷은 ‘32의 왕들과 대낮부터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군사들에게 명합니다. “사로잡으라!”(18) 자신의 뜻을 거절한 아합의 조소에 분노했던 벤하닷은 아합을 비롯한 북이스라엘의 군사들을 사로잡길 원합니다.

벤하닷은 객관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 북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전쟁에 나섰다는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도 전투준비를 구축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우세 속에 벤하닷은 방관하고 있었고, 객관적인 열세 속에 아합은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이스라엘은 아합의 불순종과 비겁함으로 이 전쟁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아람 왕의 소관도, 북이스라엘 왕의 소관도 아니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리는 전투였습니다. 전세가 자신들에게로 기울자 승리를 짐작한 아합이 전쟁의 전과를 차지하기 위해 직접 전투에 참여합니다. 승리의 관건은 객관적인 힘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기회주의자와 같은 자가 거두는 승리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의 결단으로 승리를 거두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객관적인 판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유익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적인 판단에 의존하여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객관적인 것에 의존하는 자는 그것이 자신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판단의 지나친 의존도는 내 자신을 때로는 위선자요, 교만한 모습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때론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드는 패배주의를 양성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두는 자는 객관적인 위선 앞에 허풍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승리는 객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손에 이끌리어 진정한 승리를 만끽하는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아합은 벤하닷에게 상대가 되지않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벤하닷의 군대는 10만,  아합은 고작 7,232명이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객관적인 승리의 판단으로
32명의 왕들과 술판을 벌인 벤하닷은 결국 도망갑니다
진정한 승리는 객관적으로 숫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승리도 패배도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집니다
나의 삶도 어떠한 환경이 닥치면
 어리석게도 나의 판단과 생각으로 결정을 할 때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간구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삶의 비밀병기는 오직 말씀과 기도뿐임을 알고
오늘도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 받는 나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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