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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 = 왕상 20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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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17()

왕상 201~9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

 

20:1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20:2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20:3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20:4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20:5 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벤하닷이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20: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20:7 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악을 도모하고 있는 줄을 자세히 알라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은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

20:8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아뢰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20:9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하니 사자들이 돌아가서 보고하니라

 

 

(도입)

아합은 바알신의 전도자요, 선교사였던 아내 이세벨과 함께 북이스라엘을 우상의 전각으로 만들어갑니다. 갈멜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여기에 대해 더 강력한 보복의 칼날을 세웠던 이세벨의 악함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이스라엘에는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B.C. 857년 벤하닷이 아람의 여러 군소 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연합국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다메섹의 작은 나라 왕에 불과하였던 벤하닷은 아람의 군소 국가들을 통합하는 연합 과정을 거치면서 고대 근동의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북으로는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의 아버지가 다스리던 시돈과 그리고 남으로는 유다와 동맹관계를 맺으며 세력을 확장합니다. 이때 벤하닷은 북이스라엘의 팽창을 저지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고하게 하려고 합니다. 근동의 종주 국가로서 위상을 세우기 위해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아합 왕은 당황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아합왕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과연 하나님을 떠난 자는 세상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1~4) 하나님을 떠난 자는 세상의 세력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됩니다

 

B.C. 9세기 중엽 고대 근동에는 새로운 세력의 질서가 확립됩니다. 군소한 다메섹의 벤하닷이 연합 국가를 형성하여 군사와 무역뿐만 아니라 근동의 통상 언어까지 아람어로 자리 잡도록 만듭니다. 이런 벤하닷의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표적 삼아 쳐들어옵니다. 벤하닷의 요구는 굴욕적이었습니다.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3) 아합은 삽시간에 사마리아 근교까지 밀고 들어 온 벤하닷의 군대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던 아합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세력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나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 서 있는 자는 어떤 특별한 상황이 일어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모습을 먼저 점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지 돌아보고,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자는 모든 판단의 기준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이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민감하게 들을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세력 앞에 무릎 꿇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신앙의 경각심을 늘 세워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7) 하나님을 떠난 자는 영적으로 곤고한 상태가 되어 세상의 세력 앞에 비굴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벤하닷의 메시지는 단호했습니다. ‘왕실의 모든 것뿐만 아니라, ‘온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다 가져가겠다고 말합니다. 아합의 자존심까지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5) 약탈의 기준은 아합왕이 기뻐했던 모든 것들이었습니다. 벤하닷은 자신의 신복과 종과 같은 자들을 아합의 집행관이 되도록 합니다. ‘봉신 관계를 넘어 조롱까지 뒤섞입니다. 아합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극도의 불안 속에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장로들을 청합니다. 장로들에게 자신이 아람왕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은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7) 그의 무능과 비굴함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세상의 세력 앞에 비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할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세상에서 비굴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오늘도 산성이 되어줍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기를 바랍니다. 초조와 불안함이 아니라 피할 언덕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며 이 땅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8~9) 하나님을 떠난 자는 세상의 불의 앞에 끊임없이 조롱당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아합의 말을 들은 장로들이 백성들의 뜻을 모아 왕에게 전달합니다.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8) 장로들과 백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도 벤하닷 앞에서 자신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결정합니다. 그것은 결사 항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벤하닷과의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장로들을 소집한 이유는 아람과의 단판을 위한 군사력의 총집결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람과 타협점을 찾을 길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끝장을 봅시다!”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에게는 결코 결연함이 없었습니다.

아합은 벤하닷 왕의 마음을 달래보려는 심사뿐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벤하닷 왕이 말한 것은 다 지킬 수 있지만 추가된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의 집까지 철저히 약탈하는 것은 나의 소관 밖의 일이기 때문에 내가 결정할 수가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였습니다. 세상의 불의를 향한 한 번의 타협은 절충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조롱과 집요함으로 더욱 그를 물고 늘어지게 만듭니다. 결국은 그를 쓰러뜨려 버립니다. 세상의 불의 앞에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는 세상의 불의 앞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아니라 당당하게 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불의를 이기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을 떠난 자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믿음의 눈이 아니라 육신의 눈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는 두 가지의 뚜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세상의 세력이 자신을 압도하는 것만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비굴할 정도로 세상의 세력 앞에 눈치만 보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에게는 진정한 샬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역사적인 현상 속에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비굴하게 무릎 꿇는 자가 아니라 단호함으로 그 불의를 이기도록 만들어줍니다. 세상의 불의 속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 편에서 하루는 사는 것을 더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벤하닷의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아합의 모든 것을 요구할 때
아합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육신의 눈으로 판단하며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합니다
아합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는 세상의 비굴함과 조롱거리가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된 자로서
세상의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세밀히 듣는 신앙이 되어
하나님 편에서 사는 삶이 되어
날마다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날이 되어
감사와 찬양의 입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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