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주님을 향한 신앙 = 계 4장 7~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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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화) | 계 4장 7~11절 | 주님을 향한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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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 위에 앉아 계신 주님의 위엄을 피조물인 인간의 입으로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짓입니다. 주님의 위엄은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주변을 형성하고 있는 것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삼 층 천의 열린 문’을 통해 주님의 보좌를 봅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놓인 ‘수정같은 유리바다’는 그 어떤 것들도, 어떤 마음의 죄도 털끝만큼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주님의 보좌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가 있었으며,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죄인은 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그곳, 위엄과 거룩함이 가득한 그곳에 장차 우리가 서게 됩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원죄’입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무너뜨린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주님을 향한 신앙이 답입니다. 사탄과 영적 전투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둔 주님을 향한 신앙으로 자신을 바르게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7~8) 영적으로 주님을 향해 늘 깨어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이 본 ‘삼 층 천의 하늘’은 권위와 위엄으로 가득한 주님의 보좌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 의하면 ‘4’는 ‘동서남북’, ‘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본 ‘네 생물’은 땅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생물은 ‘사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동물 가운데서도 ‘왕’으로, ‘권위’와 ‘존엄’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 생물인 ‘송아지’는 열심히 일하는 동물로써 ‘힘’과 ‘충성’ 그리고 ‘인내’를 상징합니다. 세 번째 생물인 ‘사람’의 모양은 ‘지혜’와 ‘이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네 번째 생물인 ‘독수리’는 ‘활동성’과 ‘용감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은 그 모양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생물’은 ‘2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입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습니다. (사 6:2)에 의하면 ‘스랍들’에게는 각각 ‘여섯 날개’가 있었습니다. ‘네 날개’는 ‘예배’와 관련이 있었고, ‘두 날개’는 하나님의 일을 신속히 수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의 공통점입니다. ‘네 생물’은 그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했습니다.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생물’은 주님의 명령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떨어지더라도 그 명령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생물’이 밤낮 주님을 향해 그 눈동자가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을 향해 늘 깨어있는 모습으로 이단과 같은 사탄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주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9~10)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겸손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를 향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는 예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보좌가 아니라 또 다른 보좌를 봅니다. 그 보좌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립니다. 그들은 ‘네 생물’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네 생물’은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이십사 장로들’은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은 그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어떤 표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십사 장로들’은 왕적 지위에 따른 ‘권위’를 상징하는 ‘금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십사 장로들’이 자신들이 쓰고 있던 ‘금관’을 ‘보좌 앞’에 드립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누리던 권위와 위엄은 자신들로부터 발생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관’을 벗어서 보좌 중앙에 내려놓으면서 자신들이 누리는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권위’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탄과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이십사 장로들’의 모습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교만하거나 자기 고집을 앞세우는 모습은 사탄과의 전투에서 ‘백전백패’를 당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전인격적으로 무릎을 꿇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영광은 자신의 권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겸손히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1) 자신이 주인 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 주인임을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권위를 만들어가는 신앙이 아니라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참 주인이라는 이 진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의 참 주인임을 고백하지 못하도록 미혹합니다. ‘선악과’와 관련된 (창 2:17)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미혹했던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의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할 때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탄과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참된 주인의 음성을 듣는 ‘어린 양’과 같은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며 참 주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사탄은 자신의 영광 앞에 우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도록 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할 대상은 우리가 ‘주’라고 시인하는 ‘왕이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이런 분명한 신앙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과 영적 전쟁에 임하는 자는 그 전쟁을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적용)
사탄과의 영적 전쟁은 필연적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전쟁이 아닙니다. 만약 이 전쟁이 두려워 피하기를 원한다면 사탄은 협상 카드를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올무로 묶어버립니다. 결국 사탄의 밥이 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사탄과 영적 전쟁은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사탄은 권모술수를 사용하며 우리를 무력화시킬 것입니다. 어떤 때는 공포를 조장하여 우리를 무너뜨리며, 어떤 때는 무력을 통해 무너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천만에입니다. ‘주님을 향해 깨어있는 신앙’, ‘주님을 향한 겸손한 신앙’, ‘주님이 나의 참 주인임을 고백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이 전쟁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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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신앙은 내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안에
나의 신앙이 자라고 장성한 분량이 되어
하나님나라의 일꾼이 되어 순종과 겸손으로 나아가는 날이 되어
악한 이 시대에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어떠한 환경에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기에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깨어있는 신앙과
주님을 향한 겸손한 신앙과
주님이 나의 참 주인임을 고백하는 신앙으로 나아가
날마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네 생물'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로
주님을 향해 그 눈동자가 맞추어져 있는 것 처럼
나의 모습이 날마다 주님을 향해
늘 깨어있는 모습으로 주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나가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네 생물이 밤낮으로 하나님을 향해 눈동자를 초점에 맞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살피며 늘 깨어 있는 모습처럼
나의 모든 모습도 늘 깨어 있어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