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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보좌 위에 앉으신 이 = 계 4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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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18()

41~6

보좌 위에 앉으신 이


(도입)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한계를 가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눈’입니다. 믿음의 눈은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의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환상을 통해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장차 되어질 일들에 관한 것을 계시받습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계시의 말씀은 “이기는 자가 되어라!” 그리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는 말씀이 공통적으로 주어집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요한이 하늘을 봅니다. 요한은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난 가운데 놓인 자신들에게 주어질 더할 수 없는 힘과 용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요한이 바라본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쳤기에 그 가운데서 소망과 희망을 발견했을까요?


(1) 하나님은 필연적이며, 객관적인 모든 일과 미래의 일들에 대해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이 충만한 곳이며 공의와 거룩함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시편 93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하여 말하기를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으로부터 계시의 음성을 들은 요한은 너무나도 놀라운 환상을 경험합니다. ‘하늘에 열린 문’을 봅니다. 마치 요한을 위해 준비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열린 문’과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요한을 향한 계시의 실체가 누구인지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요한에게 보인 ‘문’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크게 세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회의 문’(계3:8)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인간들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문’(계 3:20)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못 박힌 손으로 우리의 심령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신앙에 열심을 내어라!”, “회개하라!” 그리고 세 번째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계시의 문입니다. 장차 되어질 일들을 알게 하는 문입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필연적인 일, 객관적인 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떠오른 태양은 자연적 원리에 의해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를 향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3) 하나님은 절대적 위엄과 함께 자비와 긍휼하심의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요한은 보좌 위에 계신 분을 봅니다. 그는 보좌에 앉으신 그의 모습을 3가지 보석으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벽옥’입니다. ‘벽옥’은 푸른빛을 발하는 보석으로써 하늘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는 ‘홍보석’이었습니다. ‘홍보석’은 ‘거룩함’과 ‘정결함’ 그리고 ‘공의로움’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특히 ‘벽옥’과 ‘홍보석’은 (출 28:17)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하나님 임재 앞으로 나아갈 때 착용하던 흉패에 부착하던 보석이었습니다. 요한이 본 보좌에 앉으신 분의 모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는 하나님의 속성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요한은 그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무지개’입니다. 모양은 ‘녹보석’ 같았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과 노아 사이에 맺었던 ‘영원한 언약’으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 9:16)과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겔 1:28)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지개’의 모양이 ‘녹보석’과 같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이 ‘자비와 긍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은 항상 영적으로, 육적으로 핍박이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무리를 향해 공의의 심판으로, 택한 백성들을 향해서는 아담과 약속하셨던 언약대로 그 뜻을 반드시 실현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향해 자비와 긍휼을 잊지 않습니다. 악을 향해서는 멸망이지만 자기 백성을 향해서는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길을 펼치기 위해 자비와 긍휼의 신적 속성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6)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과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보좌에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둘려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의 보좌’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들이 입는 보혈로 빤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잃었던 왕권의 회복을 말하는 ‘금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좌 앞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는 ‘유리바다’가 펼쳐있습니다. 그리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모든 피조물들을 대표하는 ‘네 생물’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항상 깨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이십사 장로’, ‘네 생물’과 ‘유리바다’ 그리고 보좌에서 나타난 현상들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위엄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위는 그 보좌 앞을 밝히는 ‘일곱 등불’과 ‘지혜’와 ‘총명’ 그리고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판결의 영’이라는 완전한 ‘일곱 영’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그 위엄 앞에 피조물이며,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도전하고, 제멋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자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위 그리고 그 위엄 앞에 도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위엄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위 앞에 무릎 꿇는 겸손한 신앙으로 달려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적용)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절대적 위엄과 함께 자비와 긍휼하심의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세워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의 신앙’입니다. 앞뒤에 눈이 가득 찬 ‘네 생물’들처럼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적 열심을 다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위엄은 하늘에 머물고 있는 주권과 위엄이 아닙니다. 절대적 주권과 위엄과 함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합니다. 날마다의 신앙이 보좌 위에 앉으신 주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네 생물’의 모습처럼 깨어있는 자요,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오늘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위앞에 순종하며
겸손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깨어지기 질그릇과 같은
나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날마다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자가 되어
오늘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아래 다스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한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오늘의 신앙이 보좌 위에 앉으신 주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이 되어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벽옥과 홍보석 무지개 녹보석·······
영원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오늘은 더 알아가며
오늘은 더 닮아가며
오늘은 더 순종하며
오늘은 더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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