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회색지대의 신앙 = 계 3장 14~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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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주) | 계 3장 14~22절 | 회색지대의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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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시,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다른 도시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라오디게아는 당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부르기아 안약’을 만들어내는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B.C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때부터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으며, 의약 부분에 있어서 탁월함을 자랑했던 도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온천으로도 아주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명성 위에 세워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의 메시지가 담겨진 일곱 번째 편지가 보내집니다.
회색은 검정과 흰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어중간한 색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것을 가리켜 회색이라고 말을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겉은 화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마치 회색지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칭찬이 없는 분노가 가득 찬 음성으로 다가섭니다. 모양은 교회였지만 내막은 세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회색지대와도 같은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색지대의 신앙은 어떤 신앙의 모습이며, 어떤 이유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할까요?
(14~16) 창조의 근본이시오, 참된 증인이신 주님을 향해 믿음으로 분명하게 서 있지 못하는 회색지대의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내 자녀라 일컬음을 받지 못합니다
A.D 60년, 당시 유례없는 대지진을 겪고도 로마정부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라오디게아는 대단한 재력을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 4:13~16)에 의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기 전, 이미 누군가에 의해 세워졌으며, 바울이 각별히 관심을 가졌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3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아멘의 모습’입니다. ‘아멘!’은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라는 동의를 뜻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모습이 “아멘!”인 것은 신적 권위와 영광 그리고 재림에 대한 신실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모습입니다.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충성을 다한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참된 증인으로 그 뜻을 실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그들의 신앙은 그 지역에 공급되고 있는 온수와 냉수가 혼합을 이룬 식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에는 주님을 향한 ‘뜨거움’과 같은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차가움’과 같은 ‘회개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뜨겁든지, 차갑든지 세상으로부터 분명한 구별 점이 있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한쪽 발은 세상의 유혹과 함께하고, 또 다른 발은 주님을 향하고 있는 회색지대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내 자녀라 일컬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7~19) 회색지대의 신앙은 자신이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신앙의 정체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성도는 날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만 합니다. 신앙이 회색지대 가운데 놓인 자는 자신이 영적으로 벌거벗은 자요, 수치 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역의 특수성이 말해주고 있듯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던 교회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자’요, ‘영적으로 풍요로운 자’였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보는 시각과 주님이 보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물질의 헛된 가치관에 사로잡혀 회색지대의 신앙을 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세 가지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은 세상의 물질로 살 수 없는 ‘금’입니다. 예수 그리스를 향한 ‘순전한 믿음’으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적 더러움을 씻어내어야만 영적인 ‘흰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회개’입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회개는 영적으로 나의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벗겨줍니다.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게 만듭니다.
(20~22) 회색지대의 신앙이 되지 않도록 말씀의 거울을 통해 신앙의 녹을 날마다 닦아내는 열린 문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닫힌 문’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전인격적으로 ‘열린 문’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며 문을 두드릴 때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 회개를 촉구하며, 문밖에서 두드릴 때 양심의 찔림이 있습니다. 환경적인 고통이 가해집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바탕이 되어 ‘열린 문’이 되어 있는 성도는 그 음성에 묻어 있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과 함께 주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자는 이런 주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에 문을 여는 자는 주님께서 받으신 그 영광을 함께 받아 누리는 자가 됩니다. (계 20:4)은 말합니다. “주님과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 하리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보좌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기를 원하신다면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상 속에서 만족을 찾으면서 이기는 자가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회색지대의 신앙으로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한 자기성찰은 주님을 향해 ‘열린 문’이 되게 합니다. 이기는 자가 되게 합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적당하게 하며 세상의 것들을 함께 누리려고 하는 ‘회색지대’와도 같은 ‘미지근한 신앙’을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은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신앙을 책망합니다. 주님께서 신앙의 양심을 두들깁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의 책망과 경고의 음성은 강력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영적인 귀를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영적 수치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일깨울 때 주님을 향해 신앙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이기는 자 삼아준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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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나의 모습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불분명한 신앙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회색지대의 신앙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고
말씀안에 나의 삶이 푹 담겨져
말씀과 신앙이 나의 삶과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아니라
차갑든지 뜨겁든지 확실한 말씀의 교회와
나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순전한 믿음으로 흰옷을 입고
회개의 눈물로 안약을 발라
미지근한 신앙과 게으른 신앙을 버리며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내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주님과 날마다 식탁의
교제를 멈추지 않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