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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말씀의 신앙 = 계 2장 12~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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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13()

212~17

말씀의 신앙


(도입)

신앙의 무너짐은 그 출발이 타협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타협은 또 다른 타협을 불러일으킵니다. 결국은 신앙이 무너집니다. 요한은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를 향해 서신을 보냅니다. 버가모는 ‘우상 신전의 도시’로 불릴 만큼 우상 신전들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늘의 신을 섬기는 ‘제우스 신전’과 승리의 신인 ‘아테네 신전’ 그리고 의약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짐승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많은 신전이 그곳에 즐비하게 있었습니다. 버가모 지역은 사탄의 총본부라 칭할 정도였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철저한 무장이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분명하고, 단호한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분명한 색깔의 신앙의 옷을 입질 못했습니다. 신앙은 필요에 따라 타협도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관대한 교회’였습니다. 신앙의 근본은 어떤 경우도 타협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신앙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그 답은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12~13)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지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절개를 가볍게 여기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헬라 문화와 교육 중심도시였던 버가모는 ‘20만권’이 넘는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B.C 129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로마 여신을 위해 ‘29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신전을 건축할 정도로 우상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버가모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교인으로 등록한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할 그런 곳입니다. 이런 버가모 교회에 주님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버가모 교회는 주님을 향한 믿음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순교를 당한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내세운 황제숭배사상을 거부하다가 불에 달궈진 놋쇠로 만든 황소의 형상 위에 앉혀 처참하게 태워집니다. 그는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장면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목격하고 계셨습니다. 안디바처럼 하나님을 향해 굳건하게 세워진 말씀의 신앙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반면, 말씀의 신앙이 무너진 자는 신앙에 균열이 생긴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어떤 신앙도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은 사탄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은 안디바로 하여금 극렬한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4~15)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지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유혹 앞에 단호한 신앙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안디바와 같은 충성된 증인을 둔 버가모 교회를 칭찬합니다. 그런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해 두 가지를 책망합니다.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구나!”,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민 25:1~9)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람의 계락에 넘어져 모압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종교혼합주의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모압 신의 능력을 받기 위해 ‘행음’을 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합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에는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지고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버가모 교인들 가운데는 지역에서 만연하던 우상숭배에 따른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나의 전통문화로 받아들이면서 우상숭배의 축제에 동참하고, 제의와 관련된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 무리가 교회를 장악합니다.

    ‘발람’과 ‘니골라당’은 기독교의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의 사설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지니 다음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내면에 파고드는 유혹 앞에 신앙의 정조가 무너집니다. 관대함과 포용력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혼합주의 길을 걸어갑니다. 결국은 사망의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진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자신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유혹 앞에 단호하지 못하였고 결국 사탄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사망 권세에 빠뜨리는 죄악의 씨앗을 낳지 않았습니까! 사탄의 유혹은 강력합니다.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뿐입니다.


(16~17)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지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심판의 검이 되어 그와 싸우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에 대해 요한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은 영적전투에 임하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한쪽의 날이 구원으로 부르는 ‘십자가 복음’을 가리키는 ‘말씀의 칼날’이라면 다른 한쪽은 멸함을 말하는 ‘심판의 말씀’을 가리키는 ‘칼날’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버가모 교회를 영적 타락으로 이끄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에게 임한 ‘말씀의 검’은 영혼을 멸망시키는 ‘심판의 검’이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회개와 심판을 동시에 거론하고 있었습니다.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이 음성은 교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용 ‘메스’면서 동시에 교회를 속이는 자들을 처단하는 ‘영적 무기’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라!”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은 나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흰 돌’에 분명한 ‘새 이름’을 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이 무너진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나를 향해 심판의 검으로 싸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적용)

신앙의 모습이 선명해야 합니다. 신앙이 물에 물 탄 듯한 모습을 하게 되면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발람의 교훈과 같은 우상과 이단들의 교훈인 니골라당의 교훈에 넘어지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기다려지는 것은 멸망이라는 ‘심판의 칼날’입니다. 세상이 무너져 피할 길이 없을지라도 그 길을 피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자는 그 길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길입니다. ‘만나’와 ‘흰 돌’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런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우상 신전의 도시로 불릴 만큼 신전들이 가득한 곳
사탄의 총 본부라고 할 정도인 버가모 
헬라 문화와 교육 중심도시인 버가모

신앙의 분명한 색깔의 옷을 입지 못한 버가모 교회는
지금의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교회들이 점점 세상의 모습들을 취하며
세속화 되어가고 있음을 보며
각종 이단과 사이비는 하나가 되어 그 들의 수는 세력화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교회들은 말씀의 무장을 시키지 아니하니
그 수는 줄어들고 영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면
내 안에 파고드는 유혹과 타협하기 쉽고
버가모 교회의 발람과 니골라당과 같은 이단들에게 넘어가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신앙으로 나를 무장하고
세상과 이단들을 향하여 좌우의 날선 검과 같은 말씀의 검을 들고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신앙의 모습을 선명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불에 달궈진 놋쇠로 만든 황소의 형상 위에 앉혀 처참하게 태워질 때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말씀의 신앙으로 승리한 안디바
나의 내면도 말씀의 신앙으로 굳게 하여
주님만 붙들며
흰돌을 받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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