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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예리한 낫의 두 결실 = 계 14장 14~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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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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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20

예리한 낫의 두 결실


(도입)

‘일곱째 나팔’이 불리면서 일어나는 재앙은 ‘종말의 날’에 대한 최종 결과물을 수확하는 재앙입니다. 여기에는 ‘예리한 두 낫’에 의한 ‘두 결실’이 각각 다른 결론을 맺게 된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던 자에게는 ‘예리한 낫’이 추수의 결실을 거두는 ‘농부의 낫’이 됩니다. 또 다른 ‘예리한 낫’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오던 가짜인 쭉정이를 거둬들이는 진노가 함께하는 ‘심판의 낫’이 됩니다.

    종말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 3:15)의 언약의 성취에 따른 최종 결론입니다. 하나는 창조 회복이라는 예언의 성취의 열매이며, 또 다른 하나는 마귀를 향한 심판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종말은 하나님의 결정과 일하심 속에서 단행됩니다. ‘일곱째 나팔’이 불립니다. ‘예리한 낫’이 휘둘러 집니다. 영적인 흑암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위에 우리는 ‘예리한 낫’에 대해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14~16)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해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알곡의 결실을 맺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일곱째 나팔재앙’이 가져올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계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가운데 순수 복음을 거절했던 남은 자인 ‘완악한 자들’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을 도모하는 마귀에 속한 자들을 향한 멸망의 심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창 3:15)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언약하셨던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불변합니다. 그 언약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계시합니다. 마지막 수확을 거둘 날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 분이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실 때,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합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을 가지신 주님이 명합니다. ‘낫’은 두 가지로 그 성격이 나타납니다. (신 16:9)에서는 곡식을 거두는 도구로 소개됩니다. (욜 3:13)에서는 심판을 단행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런 ‘낫’이 ‘예리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하나님의 공의’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집행하는 측면에서 ‘예언의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은 계시 된 말씀으로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라는 명령에 대해 우리는 그 직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한 천사처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수행하는 직무에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리면 권세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라는 명령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알곡의 결실을 맺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7~18)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는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시대의 결실을 맺어가는 등불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 나팔에 의해 단행될 공의의 ‘예리한 낫’이 가지는 두 결실에 대해 하나님은 계시합니다. 이때 공의의 ‘예리한 낫’이 휘둘러지는 모습이 두 모습으로 계시됩니다. 첫 번째는 택한 백성을 불러모으는 결실의 수확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대해 주님의 모습은 ‘인자’와 ‘하늘보좌’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진노의 모습’이었고, ‘심판자’의 모습이었습니다. (17절)의 ‘또 다른 천사’는 불신자를 향한 단호한 심판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18절)의 ‘다른 천사’는 (15절)의 ‘또 다른 천사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입니다. 이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계 6:9)의 ‘순교자들의 기도’와 (계 8:3~5)의 ‘성도의 기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낫이 예리하다’는 것은 집행이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호 10:1)에 의하면 ‘포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실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반면 ‘땅의 포도송이’는 하나님의 선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죄악의 열매를 가득 맺은 모습을 상징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가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불의한 세상이 우리를 삼킬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순간도 친히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일어서야 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로 밝히는 등불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는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시대의 결실을 맺어가는 ‘등불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9~20) 흑백의 진영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덕법과 예언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종말의 때를 이끌어가며 결실의 열매를 맺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공의의 ‘예리한 낫’에 의해 ‘성 밖’에 던져짐을 당한 ‘땅의 포도송이’는 진노의 극렬한 심판 가운데 놓입니다. ‘포도주 틀’에서 짓밟힙니다. 그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펴졌다”고 요한은 증거합니다. ‘말 굴레’가 일반적인 높이로 자상에서 약 1.5m라면, ‘일천육백 스다디온’은 약 300km의 길이입니다. 이것은 종말의 심판에 대해 두 가지를 계시해줍니다. 첫 번째는 악을 향한 심판의 강력함을 증거합니다. 두 번째는 ‘4×4×10×10’에 해당하는 ‘일천육백 스다디온’의 묵시적 숫자의 개념입니다. 앞의 ‘4’가 땅의 숫자인 ‘피조물’을 상징하고 있다면, 그 다음의 ‘4’는 땅의 ‘네 방향’인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10’은 충만함을 가리키는 숫자로써 뒤에 나타나는 ‘10’과 함께 악함의 권세가 가득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날에 ‘땅의 곡식’과 ‘땅의 포도송이’로 갈리는 것은 죄악 된 세상의 진영 논리와 같은 ‘흑백논리’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예리한 낫’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계 20:13)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공의의 저울추’에 의해 그 열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죄악 된 영혼들은 자신의 논리에 맞춰 진영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말합니다. 썩은 열매가 아니라 종말의 때를 이끌어가는 결실의 열매를 세상에서 맺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한 자에게는 죄악의 강력한 심판이 있다는 ‘예리한 낫의 말씀’을 세상을 향해 증거해야 합니다. 


(적용)

‘종말의 날’과 맞물리는 ‘예리한 낫’에 의한 두 결실을 우리는 바라봅니다. 이날에 대해 추수의 때를 알리는 천사들의 사역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역이 우리에게 맡겨진 지상의 사역이라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의 삶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자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의 ‘예리한 낫’과 구원의 십자가와 심판이라는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결실을 맺는 사명의 자리에 설 때입니다.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시대를 밝히는 등불의 결실을 맺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종말은 단행되어집니다
일곱째 나팔이 불릴 때
하나님이 택한 백성가운데 완악한 자들을 부르는 음성과
악을 도모하는 마귀에 속한 자들을 향한 낫이 휘둘러집니다
지금은 인의 재앙인 은혜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알곡의 결실을 맺기를 원하며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공의의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등불과 같은 증인이 되어
종말의 때를 잘 알리며 이끌어 가는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종말의 날', '예리한 낫'
나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사명
회색지대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이 시대에 예리한 낫의 말씀으로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가는 증인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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