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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제일의 목표 = 계 13장 1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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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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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18

제일의 목표


(도입)

종말에 도래할 이레의 사건 가운데 ‘후 삼 년 반’에 일어날 ‘대 배교’는 강력한 두 짐승의 등장을 통해 극에 이르게 됩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첫 번째 짐승이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두 번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의 모습으로 ‘대 배교’를 이끌어갑니다.

    특히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먼저 나온 짐승을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하도록 우상화 작업을 펼쳐갑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표를 받지 못한 자는 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조직합니다.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다스림 안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 되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갑니다. 여기에 미혹 당하지 않도록 종말의 사건은 우리를 향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사건 앞에 미혹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할까요?


(11~12) 미혹의 영에 속아 사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말씀을 마음 판에 깊숙이 새기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종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처음 알려준 말씀이 아닙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과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계시해 주셨습니다. (단 9:27)에서도 종말에 일어날 ‘후 삼 년 반’의 사건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은 어린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합니다. ‘같이’라는 말은 진짜가 아니라 유사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잘 분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뿔’은 권세를 나타냅니다. 

    두 번째 짐승이 올라온 곳은 ‘땅’입니다. (사 6:3)에 의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한 곳’입니다. 바로! ‘거짓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다’는 것은 진짜를 모방한 가짜라는 말합니다. “용처럼 말을 하더라!” 두 번째 짐승이 거짓 선지자의 모습으로 출현합니다. 처음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거짓된 말씀을 통해 교회를 흔듭니다. (롬 16:18)에 의하면 거짓 선지자는 ‘거짓된 말씀’뿐만 아니라 ‘교활하고’, ‘아첨하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 21:8) 미혹의 영에 속아 사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말씀을 마음 판에 깊숙이 새기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13~15) 기적과 이적을 쫒아 신앙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쫒아 신앙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거짓된 말씀으로 미혹할 뿐만 아니라 (마 24:24)에 의하면 표적과 기사를 일으켜 미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 3:4)의 말씀처럼 ‘음녀’를 통해, ‘음행’과 ‘마술’ 등을 통해 미혹합니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로부터 나온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우상화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상’이라고 하면 형상 또는 모양을 가진 형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짐승의 행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배반하는 ‘대 배교’의 길을 걸어가게 만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모방합니다.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생기’는 ‘생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자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넣어!”라는 말은 두 번째 짐승의 행위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모독행위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가장 불경건한 행위였습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 배교’의 서막이 오릅니다. 그 짐승의 우상이 말을 합니다. 이 정도 되니 세상이 뒤집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우상이 말하는 것을 성경은 헬라어로 ‘랄레세’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우상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화술’을 사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상이 진짜로 말하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짐승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처럼 자신의 법을 만듭니다. “이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하라!” 종말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기적과 이적을 쫒아 신앙하는 자는 무너집니다. 진리의 말씀을 쫒아 신앙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종말에 무너짐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6~18) 영적 무지에 빠져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진리의 중심에 서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짐승이 인류를 향해 두 가지의 법을 만듭니다.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경배’하지 않을 경우 살아남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표를 ‘오른 손’에 받습니다. ‘오른 손’이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짐승의 통제 아래에서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됨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표를 ‘이마’에 받기도 합니다. ‘이마’는 사람의 인격을 상징합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전인격적으로 짐승에게 종속된 존재가 됩니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짐승의 수와 이름 그리고 ‘육백육십육’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백육십육’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알파벳이 주는 숫자의 개념을 네로의 이름(N=50이고, E=6 그리고 R=500이고 O=60, N=50)에 적용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로마 교황’이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라고도 하고, ‘율리우스 시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이름을 ‘육백육십육’으로 표현한 것은 세상의 모든 권세를 거머쥐어도 그 권력은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을 ‘6’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육백육십육’은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을 말합니다. 이것을 (계 16:13)에서는 ‘세 더러운 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된 삼위일체의 모습을 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영적무지에 빠지게 되면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 무지에 빠져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진리의 중심에 서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적용)

종말의 성도는 세 가지 신앙의 자세가 필연적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 판에 깊숙이 새기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적과 이적을 쫒아 신앙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쫒아 신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진리의 중심에 서는 신앙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무엇이 자신의 제일의 목표입니까? 사탄의 최고의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물질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신앙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종말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종말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거짓 교회
미혹한 영들이 위장하여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은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도록  하여 거짓에게 속하게 만듭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미혹한 영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말씀을 마음판에 날마다 새기기를 원하며
기적과 이적을 쫒는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위에 세워지는 성도로서
영적무지에 빠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앙으로
말씀위에 굳게서서 대적들을 물리치고
악한 마귀를 물리치는 영적 군사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기적과 이적을 쫓지 말며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매순간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님과 상의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 주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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