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합당하신 분 = 계 5장 6~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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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목) | 계 5장 6~14절 | 합당하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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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의 말씀이 ‘일곱 인’으로 봉해 있고,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두루마리의 말씀은 아무나 펼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루마리의 말씀은 하나님이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하늘의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의 모습으로는 이 ‘일곱 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의 말씀을 받고 있는 사도 요한조차도 여기에 대해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이십사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희소식을 들려줍니다. “울지 말라!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 있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기에 그리고 어떤 자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아무도 뗄 수 없는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뗄 자격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6~7) 예수님은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한 신적 권능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요한은 ‘일곱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 ‘보좌’와 ‘네 생물’, ‘장로들’ 사이에 계신 것을 봅니다. 그분은 요한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 사건의 흔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한 흔적’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이었습니다. 놀라운 장면은 그분이 보좌에 계신 이의 오른 손 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한 어린양’은 과연! 어떤 분일까요? 요한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신적 속성을 가지신 분에게만 나타나는 3가지의 분명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일곱 뿔’을 가진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뿔’은 (신 33:17)에 의하면 ‘능력’으로, (삼상 2:10)에 의하면 ‘권세’를 의미합니다. (삼하 22:3)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곱 뿔’은 ‘완전한 능력’, ‘완전한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이나 천사와 같은 피조물에게는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두 번째는 ‘일곱 눈’을 가진 모습입니다. ‘눈’은 보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일곱’이라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두루 살피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하 16:9)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는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슥 4:10)은 ‘일곱 눈’을 가리켜 ‘여호와의 눈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두루마리를 취한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계신 그분은 ‘하나님의 일곱 영’의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뗄 수 없는 대우주적 계시가 담겨 있는 하늘의 ‘일곱 인’으로 밀봉된 ‘두루마리’를 직접 펼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8~10)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공의의 만족을 채워 일곱 인을 뗄 자격을 완전히 취하신 분입니다
‘일곱 인’으로 밀봉된 두루마리의 말씀을 취한 ‘어린양’ 앞에 모든 피조물을 상징하는 ‘네 생물’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립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들만이 아는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에 대해 (사 51:11)은 이렇게 증거한 바 있습니다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새 노래’는 (계 3:12)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 기둥’을 삼은 자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떼기까지 예수님은 공의의 만족을 채웁니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공의의 만족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원래 가졌던 관계와 위치와 권세를 회복시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사탄에게 빼앗겼고, 상실해 버린 것을 회복시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아담이 그의 백성이 되었던 관계와 위치의 회복을 십자가를 통해 이룹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아담에게 주어졌던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십자가의 사건은 첫 번째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아들의 권세인 ‘왕권’을 회복시킵니다. 예수님은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뗄 자격의 모든 값을 십자가에서 공의의 만족을 채워 그 뜻을 이루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11~14) 예수님은 천하 만물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입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는 어린 양으로서 그 값을 다한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찬양받기에 정말! 합당한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주님의 그 값은 만물을 회복시키는 결정타가 됩니다. 천사들은 어린양이 무엇 때문에 찬양받기에 합당한 분인지 일곱이라는 완전수를 통해 화답합니다. 그 일곱 가지는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능력의 원천입니다. 특히 ‘부’는 부지런한 노동의 열매이며, 여호와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좌우됩니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일찍이 (대상 29:11~13)을 통해 고백하며 찬양한 바 있습니다.
요한은 또 다른 장관을 목격합니다. 이번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돌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별개로 존재하는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상징적인 분이 아닙니다. 천군 천사가 증명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이 증명하는 찬양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요 근원이 되시며 찬양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위로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닙니다. 삼위는 하나님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성자 하나님’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위와 권세를 내려놓으시고, 스스로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고통과 고난 그리고 죽음의 십자가를 친히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기 위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인내와 순종으로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공의의 만족을 채우신 예수님은 하늘로는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로부터는 찬송받기에 합당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새노래’로 찬양하는 주님의 증거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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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일곱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어린 양
'일곱 뿔', '일곱 눈', '하나님의 일곱 영'
'일곱 인' 으로 밀봉된 '두루마리'를 직접 펼치신 그 분
예수님은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신적 권능을 가지셨고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인내와 순종으로
십자가에서 공의의 만족을 채워 일곱 인을 뗄 자격을 완전히 취하신 분으로
천하 만물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드립니다
오늘도 나는 이런 주님을 '새 노래'로 찬양하는 주님의 증거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