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자 = 신 21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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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목) | 신 21장 1~9절 |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자 |
2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1: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21: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21: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21: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21: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21: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21: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21: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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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고별 설교에서 사법과 관련한 규례에 대해 말합니다. 그 가운데 살인한 자를 알 수 없는 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리고 미결 사건에 대해 공동체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규례를 줍니다. 여기에서 부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공의성입니다. (잠 19:28)과 (잠 21:7)에 의하면 악인은 공의를 업신여기고 공의 행하기를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타락한 공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타락과 맥을 함께 합니다. (사 59:4)의 말씀처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습니다.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 보좌의 기초입니다. 공의가 살아 있는 곳에 평강이 있고, 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도피성’에서부터 범인을 알 수 없는 사건까지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공의를 세워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죄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는 그날까지 지속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보혈의 공로가 완전함을 이룰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 또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죽인 자를 알지 못하는 사건의 처리 과정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공의로운 공동체로 만들어가려면 어떤 조치, 어떤 역할들이 있어야 하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 자신은 어떤 모습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4) 공동체를 공의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연대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며 공동체가 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정의를 발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다가 일어난 피살사건에 대한 전말입니다. ‘피살된 시체’는 히브리어로 ‘할랄’이라고 하여 자연사 또는 사고사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아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을 때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답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장로들과 재판장이 피살된 곳에 가서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재도록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연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건임을 알게 합니다. 두 번째는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이 일차적인 당사자가 되도록 합니다. 그 성읍 사람들을 조사하여 피살자와 무관한 것이 확인되면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대속의 제물로 취하여 하나님께 자신들이 피살 사건과 무관한 것을 증거하도록 합니다.
대속을 이룰 때 암송아지의 피가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물이 항상 흐르는 골짜기에서 진행하도록 합니다. 이 예식을 통해 피흘린 자의 죄가 그 성읍의 공동체 가운데 머물지 않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동체를 공의롭게 만들기 위해 연대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가 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정의를 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피살사건이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공의성을 부각시키는 책임 의식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의 분명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자신과 공동체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불의와 함께하고 있다면 그 허물은 결국 우리의 값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8) 하나님 앞에 세워진 공의로운 공동체가 되도록 공동체에 대해 함께 책임 의식을 가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피살사건이 소홀하게 다뤄지지 않도록 중앙 성소의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현장에 직접 나오도록 명합니다. 피살사건에 대한 조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책임자가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시 26:6)의 말씀처럼 서약하도록 합니다. 공동체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도록 합니다.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6~8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발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신들이 세워진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이와 같은 의식은 해당 성읍을 조사하여 그 사건과 무관했을 때만 행할 수 있는 예식입니다.
만약에 피살사건이 그 성읍과 관련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 죗값을 장로들과 성읍에 묻게 됩니다. 그러니 모든 장로가 한목소리로 그 성읍에는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철처히 그 사건이 조사되었다는 것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했다는 것은 첫 번째,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모든 것들이 철저히 조사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자신들이 여기에 대해 책임진다는 서약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공의로운 공동체가 되도록 공동체에 대해 공의로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가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9) 사건을 모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도모하는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성읍의 모든 장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세워진 자들이 아닙니다. 성읍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섭니다. 이때 장로들이 취해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세워졌다는 것을 아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보시기에라는 신앙의 관점으로 정직한 일을 행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있어야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겁니다. 닥쳐오는 환경과 사건을 모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찾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짓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9절)라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9절) 정직하게 행하지 않는 자는 무죄한 자의 흘린 피를 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며 공의를 세워나갈 때 (잠 16:12)과 (잠 29:4)의 말씀처럼 그 사람의 보좌가 굳게 세워지고,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사건을 모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도모하는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실함이 없이 어찌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를 잃어버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찌그러진 공의로 어찌 통치자가 정의를 말할 수 있고, 재판장이 올바르게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공동체를 공의롭게 만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세워진 모습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공의롭게 만들어가려면 세 가지 부분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공동체에 대해 연대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며 공동체가 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정의를 발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의로운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라는 책임 의식을 가지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도모하는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악인은 공의를 업신여깁니다. 그리고 공의 행하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잠 21:15)은 증거합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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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공의로운 공동체를 세워나가기 위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실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도모하는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기뻐하는 공동체를 위하여
책임의식을 가지는 신앙의 자세로 정직하게
진실하게 충성스럽게 기쁜마음으로 나아가는
나의 신앙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안에 평강과 기쁨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공의의 하나님을 전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공의로운 공동체가 되도록
말씀안에서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