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그리고 그날에 = 계 2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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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금) | 계 22장 1~5절 | 그리고 그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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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날들을 언제쯤 면할 수 있을까요? 그날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입니다” 그날에는 두 가지에 대한 완전한 결정이 이뤄집니다. 죄악으로부터 건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짐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계 22:1~5)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리고”라는 단어를 15회 사용하면서 여기에 대해 짧고,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곧 ‘여섯 번째인’이 떼지고 ‘일곱 번째인’이 떼지면서 순식간에 ‘대재앙’이 눈앞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끝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신호탄’이라고 요한계시록은 증거합니다.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이 있은 후, “그리고 그날!” ‘백보좌 심판’이 열리는 “그리고 그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우리가 살아갈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1~2)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가치의 근원을 회복 받게 되며 그리고 그날에! 생명의 원천이 흐르는 나라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에! 모든 회복이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
‘대 환란’은 종말의 ‘백보좌 심판’을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인의 재앙’과 ‘나팔 재앙’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부르는 수단이라면 ‘대접 재앙’은 마귀의 세력과 함께하며, 세상을 호의호식하고, 불의하게 살아갔던 자들에게 ‘사망 선고’를 알리는 날이 됩니다. 그리고 그날에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 못’(계 20:10)에 이들이 던져집니다. (막 9:48)에 의하면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구원받은 ‘택한 백성’은 하늘 보좌로부터 내려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인지 하나님께서 계시해 줍니다. 그곳에는 ‘생명수의 강’이 있으며, 생명나무가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으며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도록 ‘만국을 치료하는 잎사귀’가 그 나무와 함께 주어집니다. 이와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영생불멸에 대한 약속이 있으며, 영원토록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남은 자를 부르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청소하기 위한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이 고통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지 않습니다. 잠시뿐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우리에게는 모든 가치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날에!’ 생명의 원천이 흐르는 나라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그날에!’ 모든 회복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이겨나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4)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히 저주가 없는 나라에 거하게 되며 그리고 그날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와 신분에 대한 완전한 회복을 이루게 됩니다
(1~2절)이 천국에 대한 가치관을 설명하고 있었다면 (3~5절)은 그곳에 거할 믿음의 자녀들의 신분과 위치에 대한 변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 3:11)에 의하면 죄의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게 됩니다. 부끄러워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 죄성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숨기는 겁니다. 인간이 죄인으로 살아갈 때,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습니다. (레 1:4) 이하에 보면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담당할 때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반드시 속죄를 행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감당할 때도 결코 직접 대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주가 영원히 제거되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백보좌 심판대가 열리고 악한 무리가 ‘불과 유황못’에 던져지는 ‘그날에!’ 눈물의 세월을 살아왔던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신변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직접 섬기고, 직접 예배하는 자의 특권을 가지는 ‘영광의 신분’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요한은 이것을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를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신변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재와 신분에 대한 완전한 회복을 보상받게 됩니다. 세상의 어떤 계산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은혜가 존재와 신분의 완전한 회복을 통해 응답받게 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기쁨과 샬롬이 있는 나라에 거하게 되며 그리고 그날에! 그 나라에서 영원히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 땅의 어떤 영광도 천국에서 경험하게 될 영광을 대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등불’은 밝히는 기능을 합니다. ‘해’는 ‘시간’(창 1:16)을 ‘햇빛’은 ‘권능’(합 3:4)을 대신하고 있으며 ‘식물’을 자라게 하는 원천(신 33:14)이기도 합니다. 세상 가운데 필요했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분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모든 것에 대해 ‘완전함’을 대변합니다.
백보좌의 심판대가 열리고 악한 무리가 ‘불과 유황못’에 던져지는 ‘그날에!’ 눈물의 세월을 살아왔던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영광의 빛’이 함께 합니다. ‘그리고 그날!’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아래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됩니다. 오늘의 삶이 괴로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장차 ‘왕처럼 존귀한 자’로서 모든 것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이겨나가는 종말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모든 사람은 반드시 백보좌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악한 무리는 ‘불과 유황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왔던 성도들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로도 계산하고, 해석할 수 없는 곳에 근원을 이루며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영원히 병들지 않고, 저주가 없는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날!’ 찌들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던 모습이 아니라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한 회복을 받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면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리고 그날!’ 완전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완전한 샬롬을 이루게 됩니다. 백보좌 심판대가 열리는 그날! 하나님의 참 은혜를 발견하고 기쁨이 충만할 ‘그날’을 믿음의 신앙으로 바라보며 이 시대를 힘 있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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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바티스성경아카데미님의 댓글
바티스성경아카데미 작성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지막 '그날'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면하는 특권을 누리며
완전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완전한 샬롬을 바라보며
지금의 삶이 고통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있다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참 은혜안에
기쁨이 충만할 '그날'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이 되어
이 시대에 남겨진 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열심히 감당하는 충성스런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백보좌 심판대가 정말 굉장할 것 같습니다
그 큰일 그 엄청난 일이 일어나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면전에서 섬기게 되고
하나님을 부끄러움 없이 바라보게 될 그날을 소망합니다
나의 인생에 다시는 밤이 없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늘 깨어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