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새 하늘과 새 땅 = 계 2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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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화) | 계 21장 1~8절 | 새 하늘과 새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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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은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의 전반에 걸쳐 가장 대표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으로부터 내어 쫓기는 징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기 전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언약합니다. (창 3:23)의 “그를 내보내어”라는 말씀은 그를 회복시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친히 지셨던 것입니다.
낙원을 상실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사탄과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11장을 통해서도 발견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성격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마치 동화책 속의 나라와도 같은 곳입니다. 한자로 ‘신천신지’라고도 일컫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과연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을까요?
(1~2) 새 하늘과 새 땅은 사탄을 향한 종말의 날이요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새날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밧모섬에 유배 중인 요한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계시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순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하늘과 땅과는 그 성격과 본질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그리고 ‘바다’가 없어졌다는 것은 우주의 완전한 붕괴를 말합니다. ‘하늘’은 영적 존재가 숨을 수 있는 곳이며, ‘땅’은 사람의 죄로 인해 ‘엉겅퀴’가 나고 ‘가시’를 내어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을 가렸던 곳입니다. ‘바다’는 ‘무저갱’을 뜻하며 (계 13:1)에 이하면 사탄의 세력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원리를 깨뜨렸던 죄와 사탄의 세력이 존재했던 모든 요소를 다 멸합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시점을 말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시점을 말합니다. ‘내려옴’은 ‘새 예루살렘’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계시해 줍니다. 인간에게 맡겨진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서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증거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사탄을 향한 종말의 날이요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새날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날이 됩니다.
(3~4) 새 하늘과 새 땅은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 된 자가 함께 거하는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본 요한은 보좌에서 들려오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계속해서 요한에게 음성이 들려집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영원한 언약이 성립되는 그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줄 은혜가 무엇인지 밝힙니다. 첫 번째 은혜는 ‘모든 눈에 눈물을 닦아주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한 고난과 희생의 눈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닦아줍니다. 두 번째 은혜는 ‘슬픔의 원천을 다 제거하는 은혜’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어지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순종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이 인간 위에 군림하여 인간의 운명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런 악의 근원을 완전히 몰아내고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토록 기쁨의 찬양을 부르며 함께하는 곳입니다.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에게 분명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망의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새 생명의 기쁨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기쁨과 영원한 새 생명이 함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이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삶을 기억하며 고난의 시대와 시간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5~8) 새 하늘과 새 땅은 만물이 새로워지며 이기는 자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수가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존의 것을 고치고 수리하여 새롭게 그 장면을 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새 하늘과 새 땅’은 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새 창조’의 결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은 죄악의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을 말합니다. 이사야 11장에 의하면 동물들의 모든 이빨 구조에 변화가 생깁니다. 식생활의 습관은 동물들이 초식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약육강식의 악한 모습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식물들의 모습도 가시와 엉겅퀴와 같은 죄악의 산물들은 사라지고 처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창조의 모습으로 모두 새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완전한 회복을 통해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줍니다. 이기는 자는 ‘생명수의 샘물’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탄과 영적인 전투에서 어떤 무기로 싸워야 할까요? 만물이 새로워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적용)
둘째 사망에 이르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은 사탄조차도 두려워 떠는 곳입니다. 사탄은 그곳에 던져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둘째 사망으로부터 건져주는 복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너나 천국 가라! 나는 지옥 갈란다!” 모든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직! 아들의 상속권을 가진 자만이 ‘열두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아들 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한 언약’의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믿음으로 연합을 이루는 이기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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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신자는 영생이 함께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 곳은 사망과 슬픔과 고통과 걱정과 근심이 없는
오직 평강이 넘치는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된 자가 함께 거하는 곳
새 하늘과 새 땅은 악한 마귀 사탄을 향한 종말의 날이며
불신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는
최후의 날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승리의 날로
새롭게 시작되는 새 날의 역사가 시작되는 기쁜 날입니다
오늘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세상을 향해 진리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복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만물이 새로워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늘 자기를 반성하고 성찰하며 이단을 물리치겠습니다
내가 홀로 있어도 죄와 싸우고
내가 홀로 있어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