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 계 20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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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주) | 계 20장 1~6절 |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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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했던 자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시간’이었다면 ‘일곱 대접 재앙’은 마귀에 속한 자들을 ‘심판하는 시간’입니다. ‘일곱 대접 재앙’을 불러오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따른 ‘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 ‘천년왕국’과 마지막을 총정리하는 ‘곡과 마곡 전쟁’이 이어 진행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들이 ‘영생 복락’을 누리며 거할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펼쳐집니다.
우리는 지금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신앙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 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너무 모르고, 너무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마귀의 전략이 부분적으로 적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런 악한 것들의 때를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에 대해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1~3)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마귀의 권세와 함께했던 모든 영광은 영원한 죄가 되며 여기에 대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이 요청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악’을 향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못’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첫 번째로 던져집니다. 그리고 (계 12:9)에 의하면 ‘옛 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귀’라고 부르는 ‘사탄’, 타락한 천사장 ‘용’(계 20:2)을 사로잡아 끝이 없는 ‘무저갱’에 던집니다.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도록 문을 잠그고 하나님께서 ‘인봉’을 합니다. ‘용’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입니다. ‘고소자’, ‘비방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마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사탄’이라고 부릅니다. ‘마귀’가 형용사로서 ‘용’의 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탄’은 ‘대적’ 또는 ‘원수’를 표현하는 명사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용’의 하수인으로서 역할을 했던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불못’에 던지는 심판을 단행하며 ‘용’은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둬집니다. 이곳은 끝이 없는 곳이며,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문은 누구도 열지 못하도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봉’이 붙여집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세상의 불의로 얻어지는 부와 영광, 권세, 명성을 대적하는 신앙의 자세로 종말의 시간을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5)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믿음으로 세워진 자에게는 의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마귀의 권세를 향한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부활과 이들이 누릴 천년왕국의 축복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임을 믿는 믿음 가운데 세워진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임을 증거하고, 그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 당한 자들, 우상숭배와 함께하지 않은 자들과 ‘큰 음녀’가 다스리는 ‘바벨론’과 함께하지 않은 자들로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의의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첫째 부활’이라고 일컫는 것은 순서에 따라 이후에 또 다른 무리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계 20:5)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천 년이 차기까지’라는 말씀은 이후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종말에 대한 시간표’ 안에는 믿음으로 세워진 자에게는 ‘의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도, 어떤 시간도 불의함과 함께하지 않는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을 당당하고 담담하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능력 주시고 이끌어 인도하여 주십니다. 종말에 있을 부활을 소망하며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이 분명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신앙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믿음으로 세워진 자에게는 ‘의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6)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그리스도의 스티그마가 새겨져 있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에서 왕노릇 할 것이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천년왕국’과 ‘백보좌의 심판’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시간표 안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신자들이 누리는 세계와 영광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그들에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신자들’은 ‘행위에 대한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였기에 그 이름이 ‘행위책’에 남지 않습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에서 왕노릇 할 것이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계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흔적인 스티그마가 새겨있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를 갈망하는 신앙의 여정을 하나님은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의 실현을 앞당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군사에게는 더 큰 상급이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계획되어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환경과 다른 영향에 의해 변동되지 않습니다. 완전하시고, 신실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시간표’이기에 주변과 어떤 대상에 의해 변화되고 수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마귀의 권세와 영광에 대해 영원한 형벌로 심판할 것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세워진 자들을 향한 축복이 영생에 이르는 부활과 함께 계획되어 있습니다.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신앙 가운데 당했던 고난과 핍박에 대해 마치 원수를 갚아주는 것과 같은 순간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는 환란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신앙으로 일어서고,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힘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라고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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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놓여져 있습니다
종말의 시간표안에 택한 백성들의 부활과
천년왕국의 축복이 계획되어져 있기에
완전하시고, 신실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바르게 세워져
영생에 이르는 부활이 계획되어진 그 시간표안에
속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말로만 속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말씀으로 성숙되어져 믿음과 실천과 행함이 있는
십자가의 군사가 되어
종말의 때를 잘 이겨내고 마귀의 세력들을 말씀으로 물리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군사로서 주님이 주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참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군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나의 삶이 속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나는 주님 때문에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지
나는 주님 때문에 무엇을 내려 놓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입술을 제어하고 나의 마음에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