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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돌아오라 = 렘 3장 6~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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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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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6~18

돌아오라


(도입)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들도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조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속의 역사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있는 자는 아닌지 ‘정로’에 서 있는 자인지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자신을 늘 말씀에 비추어봐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정로에 서기를 갈망하던 한 왕이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입니다. 그는 애굽과 므깃도 전투에서 죽기까지 약 31년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전무후무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왕입니다. 

    요시야가 왕으로 있을 때 약관 20세 정도 되는 ‘아이와도 같은’ 한 청년 예레미야를 세웁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서지 못한 백성들을 일깨웁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가 왜!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닥칠 심판을 면할 자가 될 것인지 그 사실을 알립니다. “돌아오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유다를 향해 “돌아오라!”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외치도록 하셨을까요?


(6~10) 하나님께서는 진실 된 회개를 통해 남은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6~18절)에는 한 특이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다’라는 뜻을 가진 ‘슈브’입니다. ‘회개’를 뜻합니다. 죄로부터는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후 남유다 또한 주변국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유다의 왕들은 힘의 세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주변국들과 동맹을 맺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의 힘에 의존합니다. 그 결과 힘의 세력에 동화된 유다는 이방의 신상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이런 유다를 향해 북이스라엘이 왜! 앗수르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었는지 똑똑히 기억하도록 합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던 북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부터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이혼서’를 받는 모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도 세상의 힘과 결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우상을 섬기는 유다를 향해 ‘반역한 자매 유다’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을 통해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내가 그를 회복시키리라!”(레 26:40~42)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해 돌아오라고 예레미야로 하여금 외치게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진실 된 회개를 통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1~13)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인 남은 자를 향해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 위해 참 회개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화제를 돌립니다. “이스라엘은 유다보다 더 의롭다” 정말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의로웠을까요? 그리고 유다 앞에 사용된 ‘반역’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온 나라를 하나님께로 되돌려놓는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가운데도 백성들은 형식에 가까운 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감추어진 마음속의 모든 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의 이런 속마음을 알지 못할 리 없습니다. 속된 말로 악하기는 둘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여겨보고도 동일한 죄를 범하는 유다의 행위는 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이혼서’를 줬다는 것은(렘 3:8) 그들을 영원히 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유다 뿐만 아니라 100여 년 동안 절망과 낙망 가운데 살아가던 북쪽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깨우기 위해 희망의 빛을 던져주셨던 것입니다. “돌아오라!”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참 회개를 듣길 원합니다. 그리고 참 회개 자인 자기 백성을 향해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4~18)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의 참 회개를 통하여 새언약의 완전함을 이루시길 원합니다


유다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하며, 속이 타는지 성경은 그 심정을 유다를 ‘자식’으로, 하나님을 ‘남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배역한 북이스라엘을 잊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본문 (14절)을 증거합니다.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혼으로 데려오겠다” 우상숭배로 분열되고, 멸망한 이스라엘을 포로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계기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향해 죄를 범함으로 야기되었던 분열왕국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멸망 당해야만 했던 남과 북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똑바로 잡겠다고 말씀합니다.

    ‘시온’은 B.C 586년 유다가 멸망한 후 7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B.C 516년,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어 함께 돌아올 터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번성시켜 나갑니다. 그때, 더 이상 언약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을 ‘4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언약궤를 ‘생각하지도’, 세 번째는 ‘기억하지도’, 네 번째는 ‘다시 만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언약의 완전함을 이룰 참된 신앙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회개’입니다. (행 2:38)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적용)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배역과 멸망을 보고도 죄악을 멈추지 않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는 유다, 심지어 형식적인 회개를 통해 자신들을 위장시켰던 유다의 패역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긍휼의 하나님이며, 노를 한없이 품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참 회개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이런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 ‘슈브’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회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회개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십자가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에게 ‘새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처럼 이 시대를 향해 우리를 세워, 오늘도 목소리 높여 외치도록 그 사명을 주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눈여겨 보고서도 동일한 죄를 범하는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결탁하며 우상을 섬기는 유다를 향해
반역한 자매라고 일컬으며 '돌아오라'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하여 참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을 행하는 자라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은혜를 베풀며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악한 자와 어리석은 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나라를 돌아보며
교회들은 세상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며 깨닫고 돌아오도록
말씀의 군사들을 길러내어 세상을 향하여 전하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악한 자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돌아오도록 교회를 세우셨고
성도들을 사명자로 세웠기에
예레미야처럼  오늘도 목소리 높여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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