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책임을 다하는 교회 = 렘 1장 13~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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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주) | 렘 1장 13~19절 | 책임을 다하는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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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마비 상태에 놓인 나라와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에 대한 두 가지 환상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환상이었던 ‘끊는 가마’는 첫 번째 환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치명적인 심판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고, 세우는 것은 영적으로 암울한 그 시대를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선전하고, 고객 수를 늘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일깨우고, 영생 복락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잃은 양’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 시대를 향해 어떤 책임 있는 모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13~15) 영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서도록 그 길과 방향을 바르게 제시하는 바른 영적 나침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끓는 가마의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것을 환상 중에 봅니다. 끓는 가마의 환상이 유다를 향한 심판을 말하고 있다면, 가마의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것은 그 재앙의 심판이 북방의 나라를 일으켜 진행될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가마의 환상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극심한지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고, 이후 앗수르가 계속해서 근동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을 때도 남유다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배은망덕함은 이방 신상을 섬기며,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의 길을 걸으며 부패와 방임으로 나타납니다. 지도자들은 한술 더 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거머리처럼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신들의 만족을 채워갑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을 하던 그 시대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였고, 제사장들은 권력과 유착하고 있었습니다.(렘 5:31) 지도자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타락에 나라가 병들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봅시다. 지금 영적으로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린 나라와 민족을 향해 교회는 영적으로 바른길을 제시하며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서 끌어모으는 사업체가 아니라 ‘십계명’의 바른 영적 나침판으로 나라와 민족을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나침판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북쪽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이 말씀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서도록 그 길과 방향을 바르게 제시하는 영적 나침판이 되어야 합니다.
(16~17)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 영적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영적 저수지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바른 나침판은 비판만을 앞세우는 지도가 아니라 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 남유다가 멸망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십계명’의 무너짐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영적인 바른 나침판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는 죄악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영적 흑암 속에 놓여 있는 나라와 민족을 향해 살길을 제시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담대하게 감당하도록 합니다.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영적 흑암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영적 전투가 필연적입니다. 영적 전투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엡 6:11~13)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합니다. 말씀으로 ‘영적 저수지’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한 ‘영적 저수지’는 마귀의 세력과 영적 전투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방어의 ‘전신갑주’가 될 뿐만 아니라 최고로 강력한 공격용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영적 흑암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 영적 영양분을 공급하는 말씀의 저수지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8~19)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것임을 알고 세상을 향해 진리를 바르게 증거하는 진리의 파수꾼이요, 진리의 증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을 할 때 그의 나이는 역관 20세에 불과하였으며, 제사장들과 거짓된 선지자들이 권력자들과 결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마치 사막에 홀로 서 있는 전사와도 같았던 예레미야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보잘것없었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레미야를 어떻게 지켜 보호할 것인지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는 ‘견고한 성읍’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두 번째는 어떤 자들에 의해서도 그 뿌리가 뽑히거나 부러지는 일이 없는 ‘쇠기둥’과 같은 존재로 세워질 것과 세 번째는 외부에서 허물 수 없는 ‘놋성벽’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세상을 향해 ‘견고한 성벽’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쇠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지켜내는 ‘놋성벽’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새겨진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인 ‘십사만 사천’이 최후의 승리를 알리는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그날까지 교회는 진리를 바르게 증거하는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진리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향해 진리를 바르게 증거하는 진리의 파수꾼이요, 진리의 증인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적용)
영적으로 무너진 세상은 악하고, 추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은 박물관에 박제로 포장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하고, 불경건하고, 추악한 시대에 대해 교회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세 가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영적으로 건강한 나침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고장난 나침판은 소망과 희망을 바르게 제시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 영양분을 공급하는 영적 저수지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진리의 파수꾼이요, 진리의 증인으로 그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종말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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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영적으로 무너져 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서도록 길과 방향을 바르게 인도하는 교회
세상을 향하여 바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
보호처가 되는 교회
피난처가 되는 교회
방주의 역할을 하는 교회로서
성도들을 영적으로 강건하여질 수 있도록 말씀을 공급하며
말씀으로 하나가 되게 하여 악한 이 시대를 위하여 기도하고
영적으로 무장하여 종말을 잘 이겨나가도록 견인하는 교회로서
이 시대에 진리의 증인으로 책임을 긑까지 감당하는 종말의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