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그릇된 판단 = 렘 42장 15~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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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목) | 렘 42장 15~22절 | 그릇된 판단 |
42: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42: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42: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42: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 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42: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42: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42: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42:22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
(도입)
B.C 586년, 당시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거리에는 피비린내와 울부짖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점령한 유다를 신속하게 다스리기 위해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웁니다. 그러나 그달리야는 왕족인 이스마엘에 의해 살해됩니다. 이스마엘의 반란이 발각되자 예루살렘에 남은 온 백성들은 바벨론으로부터 또 다른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공포에 휩싸입니다.
이스마엘을 비롯한 반란 세력과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한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살길은 오직 애굽으로 도피하는 것뿐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애굽으로 도주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도록 합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깨닫도록 하셨을까요?
(15~17)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앞세운 그릇된 판단에 의지하는 자는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반란 세력이었던 이스마엘의 일당과 그를 진압하려고 했던 요하난과 요하난을 따르던 백성들이 동일하게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으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보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공통으로 선택한 것이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하난은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고자 하는 무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전쟁도 피하고, 양식도 풍성하게 공급받기 위해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자라고 말하면 잘못되리라!” 이 비참한 멸망의 현실을 통해 도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을 점검하고 되돌아보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솰롬이 없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애굽을 향한 걸음은 스스로 애굽의 종이 되는 길이었으며, 여호와를 버리고 애굽의 우상을 향한 발걸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판단 앞에 단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애굽을 향한다는 것은 장소적인 이동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걸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힘의 세력 밑에서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받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서 살기로 고집하면, 첫 번째 두려운 칼이, 두 번째 두려운 기근에 의해 너희들은 거기서 죽으리라!” 어리석은 판단을 앞세워 자신의 걸음이 세속인 애굽을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그릇된 판단은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가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8~19) 세상의 헛된 기대를 품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그릇된 판단은 무가치하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며 저주와 치욕 거리가 그 값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정된 공간과 지역을 다스리는 신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다스림은 여전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홍해를 가르고, 요단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께서 유다의 무리가 애굽으로 도망하려 할 때 발걸음을 강제로 막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분노와 긍휼, 생명과 죽음의 두 길 중에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기 전에 먼저 선지자를 통해 피할 길을 알려줍니다. 당할 심판에 대해 핑곗거리가 없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최후의 말씀을 남깁니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창 19장)에 보면 세상의 헛된 기대를 품고 선택했던 소돔이 천국인 줄 알았던 롯은 소돔의 멸망과 함께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립니다. 세상의 헛된 기대를 품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그릇된 판단은 무가치하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과는 저주와 치욕 거리가 그 값이 됩니다.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 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만물에 대해 화복을 주관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판단은 무가치하고 허망할 뿐입니다.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임할 것은 저주와 치욕 거리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0~22) 신앙의 이중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망령되어 일컫는 자의 그릇된 판단 앞에는 멸망 외에 어떤 결실도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하난은 비록 바벨론의 편에 서서 일을 하였지만 그 또한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애굽으로 도주하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셔야 할 것은 요하난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대해 하나님께서 동의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하면서, 너희 마음을 속였구나! 너희들은 애초부터 관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너희들의 뜻에 대한 관찰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 맹세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망령된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경고를 들려줍니다.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은 처음부터 이중 가면을 하면서 자신의 뜻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으며, 사전에 계획된 이중 가면의 모습이었습니다. (20절)의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라는 말씀 가운데 ‘속였다’라는 말은 원문에 의하면 ‘사역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속이는 것이 사전에 계획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행위입니다. 신앙의 이중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망령되어 일컫는 자의 가증스러움 앞에는 멸망 외에 어떤 결실도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는 무릎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상황 속의 판단자가 아니라 세상이 무너져도 하나님 안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그릇되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세속주의에 물든 애굽에 머물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결단을 내리십시오!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앞세운 자신의 그릇된 판단은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만들뿐만 아니라 무가치하고 허망한 결과만을 가져오게 됩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람의 소리에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자신의 그릇된 판단을 내려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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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며 아니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이 닥쳤을 때
나의 생각과 세상적인 방법과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섣불리 개인적인 욕심으로 판단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그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우리의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절망과 위기의 상황앞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요하난과 예레미야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이 고난의 배경과 회복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응답을 받았지만
신앙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다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요하난 처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는 무릎이 되어야함을 깨닫습니다.
또한
도중에 포기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는 걸음이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