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믿음있는 신앙의 자세 = 렘 32장 6~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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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토) | 렘 32장 6~15절 | 믿음 있는 신앙의 자세 |
32:6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32: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32:8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32: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32:10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32:11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가지고 32: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 앞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32: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32: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32: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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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남은 땅, 유다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나라의 국운이 다했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전전긍긍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줍니다. “내가 이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길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죄악 된 모습을 떨쳐버리라고 선지자를 통해 수없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조차 깨닫기를 거부했던 유다를 향해 최후의 심판의 칼을 듭니다.
예루살렘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를 명령합니다.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놓인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도록 명합니다. 이 명령 가운데는 어떤 의미가 새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이 명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요?
(6~8) 위기와 절망 앞에서도 당황하거나 불신앙의 자세를 취하는 자가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믿음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고한 대로 이 전쟁 와중에 자신의 땅을 매매하기 위해 한 사람이 나아옵니다. 그의 사촌 하나멜이었습니다. (렘 32:2)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활동을 하다가 시드기야 왕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런 예레미야를 찾아간 하나멜은 예레미야를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사라는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왕상 21:3)에 의하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매매를 금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하나님과 언약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업을 그것도 전쟁 중에 매매를 합니다. 자신의 땅을 같은 레위인이요, 같은 제사장 출신이요, 사촌인 예레미야에게 매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갔습니다.
(레 25:23~27)에 의하면 ‘고엘 제도’는 세 가지로 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팔린 땅을 사서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두 번째는 가난하게 된 그 사람이 돈을 모아 그 땅을 다시 사는 겁니다. 세 번째는 어떤 능력도 없을 때 그 땅을 49년이 되는 희년에 자신의 기업을 산 사람으로부터 그 땅을 돌려주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레미야를 찾아간 하나멜은 이런 경우에 해당이 되지 않는 매매였습니다. 위기와 절망 가운데 당황하여 불신앙이라는 살길을 택합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신앙을 선택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환난과 역경이 다가왔을 때 분명히 구별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멜처럼 나타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절박함 속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영적 귀를 가진 자가 되어야 예레미야와 같이 실족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믿음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9~1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저울질하지 말고 순종하는 구체적인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질하고 판단하는 자는 자신의 삶이 날마다 불안하기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제안을 사촌 하나멜로부터 들었을 때, 그는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다”라고 예레미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은 십칠 세겔’에 삽니다.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가지고” 전쟁 중에 그것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 당할 줄 알고도 그 밭을 삽니다. 심지어 법적인 절차를 거쳐 합법적인 거래가 되도록 합니다.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동일한 두 장의 서류가 만들어집니다. 한 부는 관습에 따라 항아리와도 같은 곳에 넣어 그 사실을 변경할 수 없도록 봉인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부는 이 땅의 새로운 소유자가 된 예레미야가 그 문서를 가집니다. 그는 자신의 사촌의 간층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반듯이 회복될 것을 믿었기에 자신의 사촌 하나멜의 황당한 거래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예레미야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85세의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그 말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순종할 것인지를 말합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 14:12)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질하지 말고 구체적인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2~15)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믿음 있는 증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감옥에 갇혔던 예레미야는 자신보다 자유로운 처지에 있었던 바룩에게 이 매매된 증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예레미야는 매매의 증서를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도록 합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라고 말씀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확신 가운데 진행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이 땅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돌아오고 이 땅으로 회복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여러 사람들에게 밝혀 보입니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말씀의 산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말씀에 대해 믿음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비상식적인 아나돗 땅의 매입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 분명한 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믿음 있는 행동을 하는 자가 되어라는 것입니다. 망한 나라의 땅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일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행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더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조롱할지라도 그 말씀에 대해 저울질하지 말고 예레미야처럼 믿음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절벽이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말씀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믿음 있는 성도의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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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멜은 불신앙의 길을 선택하고
예레미야는 신앙의 길을 선택합니다
인생의 여정은 항상 순탄하지는 않고
어렵고 힘든 상황이 주어질때가 많습니다
마음의 고통, 육신의 고통, 주변으로 인한 고통등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환경을 옥 죄어 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연약할 때는 이러한 환경이 닥치면
인본주의의 모습으로 인본주의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칠때도 있었습니다
그 어떠한 환경이 닥칠지라도 예레미야처럼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나의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때로는 손해보는 듯한 상황이 주어질지라도
신앙으로 나아가는 절대적인 믿음의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순간에는 어리석어보이고 손해보는 것 같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종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길과 방향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신앙을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관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하며, 넘어지게 할 수 있으나,
우리를 멸망시키지는 못합니다.
나를 두렵게만 하고 멸망 실키지 못하는 상황속에 절망하지말고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신앙으로 반응하며,
세상의 관점이 아닌 신앙의 관점으로
예레미야처럼 신앙의 가치관으로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지금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신앙으로 반응하는 과정 인건지 아닌지, 점검하고 회개하며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근심하고 걱정하는 시간에
교회나가서 일 할것이 있는지 없는 지 살펴보며,
청소라도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