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하나님의 위로하심 = 렘 15장 10~ 20절
페이지 정보
본문
17일(금) | 렘 15장 10~20절 | 하나님의 위로하심 |
(도입)
하나님의 징계가 너무나도 무거워 예레미야는 유다를 버리지 말아 줄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가 하나님을 버린 결과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그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다”라는 신인동형론적인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과 유다는 완전히 끝난 관계입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단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면 하나님의 공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잘잘못만을 따지는 속성으로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유한성을 가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레미야는 “내게 재앙이로다!”라고 말을 하면서 계속되는 중보기도의 좌절과 회개치 않는 백성들, 자신을 향한 백성들의 폄하와 저주 앞에 좌절하며 낙담합니다. 그러나 언약 파기로 말미암아 마땅히 심판으로 끝을 맺어야 할 유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희망의 빛을 던져줍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유한성을 가진 사람의 생각과 기대를 뛰어넘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어떤 위로하심이 작동하고 있을까요?
(11~14) 죄악은 심판으로 다스리시지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증거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어 그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지 못한 예례미야는 동족이 자신의 대적자가 되어 버렸고, 비방거리가 되어 버린 가운데 더 이상 살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이때 탄식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앞날에 관해 계시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죄악 가운데 놓인 예루살렘은 심판으로 다스려지지만, 예레미야는 사람들에 의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며, 존귀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비록 진리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곧바로 자복하고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이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낙심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대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다스리지만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에게는 예레미야에게 새 힘을 주신 것처럼 새 힘을 주어 그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자는 그 죄악의 결과로 인해 그 소유가 자랑이 되지 못할 것이며, 잡힌 자가 되어 하나님의 원수와 같이 되어 진노의 불 가운데 서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5~18)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며 헌신하고 달려왔던 그 손길이 마치 외면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그를 더욱 강하게 연단시키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절박하게 다시 호소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특히 ‘알다’의 뜻을 가진 동사 ‘야다으’는 완료형으로써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줄을 확실히 알아 달라’라는 호소이며,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아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동시에 그곳으로부터 헤어 나오도록 해달라는 간절함과 간곡함을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나는 주의 이름으로’, ‘주의 손에 붙들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개인의 유익과 개인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배교의 자리에 앉지 않았으며 선지자로서 오직 주를 위해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만을 따랐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예레미야는 히브리어 ‘람마’라고 하는 ‘어찌하여’라는 의문사를 사용하여 고통이 자신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18절) ‘속이는 시내’란, 시내의 형태는 가지고 있지만 막상 물이 말라 흐르지 않는 시내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의 갈급함과 고통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며 헌신하고 달려가는 자에게 때로는 애매한 고난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더욱 정금처럼 사용하기 위해 연단시키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9~21) 진리의 증인으로 달려가는 걸음이 외롭고, 곤고한 가운데 세워진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세상을 바라보지 말로 오늘도 이런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지자는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각성시키는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하며, 백성의 악함을 본받거나 미혹되어서는 안 됨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낙심 가운데 놓인 예레미야를 향해 위로합니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악한 자의 손’과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예레미야는 사명자로서 사역을 펼쳐나갈 때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값싼 메시지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인 심판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사명에 충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영광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과 질책이었습니다. 실망과 낙심에 빠집니다. 이런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 응원합니다. 선지자를 향해 돌아오라고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진리의 증인으로 달려가는 걸음은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걸음이 아닙니다. 때로는 외롭고, 곤고한 가운데 세워지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세상을 바라보지 말로 오늘도 이런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격려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응원에 힘을 내어야 합니다.
(적용)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처지에 놓입니다. 그는 탄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지자에게 책망과 함께 그를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때로는 말씀에 대한 순종의 대가가 영광이 아니라 고난과 핍박과 조롱의 결과물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바른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께 무릎 꿇고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은 잘잘못을 따지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함과 위로함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기를 갈망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 이전글(10월 18일) 지워지지 않는 이스라엘의 죄 = 렘 17장 1~ 11절 25.10.18
- 다음글(10월 16일)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 렘 15장 1~ 9절 25.10.16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예레미야는
질책과 핍박을 받으며 실망과 낙심에 빠졌을 때 예레미야를
하나님은 위로하며 응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속에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의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낙망과 실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지금의 이 시간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도 어떤 환난과 고통이 온다할지라도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위하여 일하는 전도자의 사명과
증인의 길을 걸어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참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대가가 영광이 아니라
고난과 핍박과 조롱의 결과물을 가져 오면
낙심되고 절망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절대 방관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하나님이시기에 참 위로와 소망으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은 한 순간도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일하고 계셨고
열매와 응답으로 우리의 삶에 수많은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금요 전도가 있는 날입니다.
한 생명이 관심갖고 듣고 회개하며 돌아오는 드라마같은 일도 없고
이렇게 전도하는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고
몸도 으실으실 아파오는 것 같지만...
오늘의 말씀으로
다시 힘을 내어 봅니다.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함과 위로함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기를 갈망하는 사명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