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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 렘 15장 1~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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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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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1~9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도입)

예레미야 선지자는 14장을 통해 유다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것을 슬퍼하며 부디 유다를 버리지 말 것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이런 내용의 기도조차도 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유다의 죄악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거둬 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가 없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의식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차라리 유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도록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의미 있는 한 말씀을 유다를 향해 던집니다.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15:6)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이 말씀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1~4) 심판은 반복되는 악에 대한 공의의 발동이었으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필연성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단행하시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케 하셨고, 돌아오도록 그 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습을 합니다. 그러니 최후를 알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악에 대한 공의의 발동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공의로움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비를 내려달라는 예레미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단번에 거절합니다. 그 기근은 자연적인 현상의 재해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께 중보기도 할지라도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나아 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이들의 질문은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항변하고 짜증 내며 따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죽음’, ‘칼’, ‘기근’, ‘포로’에 따른 공의의 값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이는 므낫세 왕의 악정과 바알을 숭배했던 그 영향(왕하 21:16)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으며,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여 무엇이 죄인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심판은 반복되는 악에 대한 공의의 발동이었으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필연성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5~6) 심판은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며 은혜의 때를 스스로 걷어찬 자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의 발동이라는 것을 세상 가운데 증거해야 합니다


회개와 용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때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때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때는 무한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의 기간이 분명히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에 완전히 물 들은 이들은 무엇이 하나님을 향해 죄인지조차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루살렘을 향해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선지자들을 보내어 알도록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수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의 때를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예루살렘을 누가 불쌍히 여기겠냐며 반문합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결과물임을 강력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후회나 인내의 한계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은혜의 때’를 통해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한계를 넘어버렸다는 ‘신인동형론’적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 18:22)에 의하면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길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때’를 스스로 걷어차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는 이 시대의 예레미야가 되어야 합니다.


(7~9) 심판은 피할 길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수치와 멸함으로 철저하게 응징이라는 것을 세상을 향해 증거해야 합니다


심판은 몰래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드러내 보이면서 임합니다. 그러나 그 효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을 전개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를 향한 심판은 기업으로 준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멸망의 자녀가 될 것이며,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지 그 모습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곱을 낳은 여인이 쇠약하여 기절할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이를 ‘일곱 낳은 여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는 ‘자녀’와 완전수인 ‘일곱’이 합쳐진 것으로 축복을 향유한 여인을 말합니다. 이런 일곱 자녀와 여인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진멸 당할 것과 남은 자는 대적의 칼에 의해 철저히 죽임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예레미야는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피할 길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입니다. 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수치와 멸함으로 철저하게 응징받는 것이 심판이라는 것을 예레미야처럼 세상을 향해 힘 있게 증거해야 합니다.


(적용)

사람은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온유함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오늘이라는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일반적인 은총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주신 마지막의 유예기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주입니다. 세상이 마치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심판을 바르게 증거하고, 전하는 이 시대 위에 세워진 예레미야와 같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때에 돌아오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지만
마지막 심판은 기다림과 용서가 없는 공의의 발동으로
피할길이 없는 심판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세상가운데 허덕이며
세상의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하여 세상과 짝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들을 하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때가 곧 다가올것을 알리며
지금의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은혜를 베푸는
마지막 유예기간이라는 사실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심판을 바르게 증거하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처럼 세상을 향하여 힘있게 증거하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profile_image 다니엘쌤 작성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선지자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공의를 계시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가르쳐주셨고, 기다려주셨습니다.
노아의 방주, 애굽의 400년, 바벨론의 포로기등의 역사를 통해
심판은 공의의 발동이며 피할수 없는 필연성이었음을 마음속에 각인하게 됩니다.
지금이 '은혜의 때'임을 감사하며,
죄악으로 달려가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바르게 증거하고 전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와 남은자가 될수 있도록 헌신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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