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 = 욘 3장 1~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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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목) | 욘 3장 1~10절 |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 |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3: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3: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3: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3: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3: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도입)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는 사건과 사물을 통해 발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기표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회개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요나에게 자신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를 향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반대쪽인 다시스로 달아납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오직 멸망과 심판뿐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부정한 것들이 사는 장소에 자기를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불쾌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편협한 선민주의에 사로잡힌 ‘불편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켜 그들을 멸망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편함’이 요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할까요? 멸망을 기뻐할까요? 구원을 기뻐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마 5:39)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그리고 (롬 12:21)은 말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는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무엇을 이루길 원했을까요?
(1~3) 사람은 서로서로 저울질하고, 판단하여 멀리할 때도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라는 선한 기쁨의 의지를 발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잘못된 선민사상에 따른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납니다. 불순종 가운데 놓인 요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납니다. 폭풍을 몰고 온 원인 제공자가 요나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는 폭풍이 일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로 던짐을 당합니다.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킵니다. 무덤과 같은 물고기 배 속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요나의 입에서 회개의 음성이 터집니다.
요나를 큰 물고기 뱃속에서 구해내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두 번째로 명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요나에게 처음 명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약 60만 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큰 성읍’ 니느웨를 요나로 하여금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사명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사람은 서로서로 저울질하고 판단하여 상대를 멀리할 때도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라는 선한 기쁨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를 회복시켜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는 길에 들어서도록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따라 내가 복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의 명한 바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4~8) 사람은 편견을 통해 서로를 적으로 만들 때도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영광의 광채를 비추고, 능력으로 세상을 회복시키길 원하는 선한 기쁨의 의지로 오늘도 세상을 향해 서 계십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잡고 있는 요나에게 또 다른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욘 3:3)에 의하면 니느웨성은 그 규모나 크기에 있어서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잡기까지는 최소한 3일은 걸리는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태도를 보십시오.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을 때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물고기의 뱃속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사명을 부여잡고 나갈 때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루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의 활동은 ‘삼일’이 아니라 ‘하루’가 전부였습니다.
또 하나 ‘다니며’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진심 어린 하나님의 가슴이 아니라 겉만 핥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쳐’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그 입의 외침은 영혼이 없는 외침이었으며 회개가 아니라 멸망을 원하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릇된 편견에 따른 요나의 모습은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꺾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신앙이 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광채를 발하고,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길 하나님은 원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가 세상 가운데 충만하게 넘치길 힘쓰고 애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9~10) 악의 무리가 우리를 유혹하여 패망의 길로 인도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회개가 반드시 용서와 자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는 회개하는 자를 향해 용서할 것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해 요나는 속으로 니느웨의 멸망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는 법대로 심판하는 ‘공의’의 속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용서’와 ‘자비’의 속성이 함께 있습니다. 니느웨의 참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속성을 발동합니다. (9절)과 (10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탄의 속성은 속임과 거짓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슴 아파합니다. 악의 무리가 우리를 유혹하여 패망의 길로 인도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참 회개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용서와 자비의 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한 기쁨의 의지로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친히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이런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증거하는 일에 사심과 편견이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나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의 사역을 이뤄가야 합니다.
(적용)
(눅 21:20)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실질적인 마음은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의 의지는 죄악 가운데 놓여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탄이 쳐놓은 다양한 음란과 타락, 불의와 부정, 부패라는 늪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그 늪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종말의 날, 백보좌 심판대에서는 오직 천국과 지옥이라는 판결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메시지는 다릅니다. 심판의 메시지 속에는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예고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밝혀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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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방인인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시지만
요나는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스로 갑니다
요나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만 하나님은 요나가 니느웨로 가도록
환경을 만드십니다
나의 신앙의 모습도 요나와 같은 모습이 있어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하며 나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면서도
곁길로 갈 때도 있고, 내 마음과 내 생각대로 판단하여
어리석은 길을 갈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고 하면서
나의 마음과 행동은 어긋나는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를 저버리지 않고
오늘도 하나님 사역에 적극적으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동참하는 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요나를 사용하신 것처럼
지금의 나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바자회를 기쁜 마음으로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알고 오늘도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로 우리를 멸망이 아닌 구원의길로 인도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신앙 생활을 잘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의 의지속에 어떤이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인간의 편견으로 저울질 하고 판단하며,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전도자가 아니라,
나에게 사랑과 자비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
누군가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겸손한 전도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