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십자가의 증인 = 고전 2장 1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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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금) | 고전 2장 1~5절 | 십자가의 증인 |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도입)
약 1년 6개월간 머물며 사역했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에게 ‘스데바나 집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고 옵니다. 그러나 바울을 찾아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만듭니다. 성도들은 당파를 이루어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마치 원수들처럼 싸우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헬라사상과 같은 ‘이교 문화’와 타락의 문화가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와 교회를 온통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은사와 신앙에 관계되는 문제를 놓고 교회가 그 중심을 잃어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타도! 예수쟁이!”를 외치며 다메섹을 향하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통한의 회개로 거듭난 그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서신은 여기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2) 세상의 지식을 전하는 훌륭한 이론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르게 증거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사역한 것을 이렇게 총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절)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의 큰 이유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 아덴에 머물면서 얻었던 ‘산 교훈’이 크게 작용을 합니다. 철학을 쫓아 탐구에 열정적이었던 아덴 사람들에게 들렸던 ‘십자가의 도’는 또 다른 하나의 기가 막힌 신종 학문이었습니다. 이때 지식과 철학적인 논점을 가지고 그들을 상대했던 바울의 복음 증거는 능력을 발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아덴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닫습니다. 훌륭한 화술이나 지혜로는 복음을 바르게 증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교회들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사람의 명성이 그리스도의 영예를 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재미있고 시사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 사교 집단이 되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기복적이고, 번영신학이 ‘회개’와 ‘죄사함’을 증거하고 있는 ‘십자가의 복음’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복음은 세상의 지혜와 논리를 증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지식을 전하는 훌륭한 이론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증거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 자신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결코 소심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복음’ 앞에 선 바울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히 떨었노라!”(3절)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복음을 잘못 전해서는 안 된다는 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심히’라는 단어는 ‘약하고’ 그리고 ‘두려워하고’, ‘떨었노라’라는 모든 단어를 수식하는 형용사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심적인 상태가 매우 위축되어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덴에서 철학적 접근방법을 이루며 전도했던 바울은 전도는 세상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바울의 영향은 그가 고린도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 그대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십자가 복음’ 앞에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은 ‘십자가 복음’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습니다.
사도 바울의 떨림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떨림이었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돌아보는 떨림이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 세상을 향해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마음은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강하게 느껴지고, 말씀에 대해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자는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자랑을 증거하기 쉽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모습은 자기 능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전합니다. 세상의 지식을 전하는 훌륭한 이론가가 아니라 우리의 대속을 이룬 그리스도의 보혈을 바르게 증거해 내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4~5)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복음 증거의 주체자는 자신이 아니라 ‘성령’임을 분명히 합니다. (행 1:8)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영적 전투인 복음 전도 사역은 말의 재주나 세상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입니다. 만약 바울이 전했던 복음이 사람의 지혜와 언변에 있었다면 그가 전한 복음은 파도 앞에 놓인 모래성과 같이 무너져버렸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보다 더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게 되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에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 복음’을 통해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슥 4:6)에 의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허탄하여 결국은 세상의 환난과 풍파 앞에 무너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내 의지로 하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교회 일과 전도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명를 감당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련하기 짝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마치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력으로 그 능력이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라고 놀리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나타남’이 없습니다. 바울처럼 세상 사람들을 향해 십자가로 당당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맞서십시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십자가 앞에서 나는 두렵고 떨리는 신앙의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는 들어가도 복이 있고, 나가도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언제나 십자가를 자랑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일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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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복음은 세상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지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는지
왜 우리가 구원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전하는 자로서
우리의 행실이 세상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앞에 나의 지식과 자랑이 아니라
나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과 일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십자가의 증인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는 성도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