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십자가 안에서 = 고전 1장 18 ~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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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수) | 고전 1장 18~25절 | 십자가 안에서 |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도입)
사람은 무엇 때문에 죽음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과 근심과 염려 가운데 살아갈까요? 그것은 인간의 원죄의 결론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간이 지은 원죄는 비록 인간으로 인해 이루어졌지만 그 시작은 사탄의 유혹으로부터입니다. 여러분! 천상의 천사였던 사탄의 타락은 자신이 거하던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하늘과 땅, 어디에도 자신이 거처할 곳이 없었던 사탄은 자신이 거처할 세계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자 하나의 의식 세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의식 세계’인 ‘공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이 의식 세계를 다스리는 ‘공중의 권세자’가 됩니다.
오늘도 사탄은 공중의 권세자로서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미혹을 통해 다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으로 흑암에 가려진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영적 흑암 속에 놓인 인류를 일깨우고, 우리의 원래의 가치관을 회복하기 위한 길은 없을까요? 있다면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18~20) 하나님을 떠난 의식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광명을 찾는 길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 흑암의 권세를 이긴 십자가 안에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했던 고린도 교회가 분쟁과 각종 오류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철필을 듭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우리로 하여금 마치 에덴동산의 장면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당시 사탄의 앞잡이였던 거짓된 교사들은 교인들을 미혹하여 사도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헛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 무질서를 조성하였으며, 교인들로 하여금 각종 은사를 자랑삼아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합니다. 철학적 논증에 치우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 바라보던 고린도 교회의 영적 미성숙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사탄은 우상의 제물에서부터 부활에 이르는 논쟁을 불러일으켜 교회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자신이 ‘십자가 복음’을 세상적인 지식과 말의 지혜로 가르치거나 전하지 않은 이유는 ‘십자가의 도’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 ‘십자가의 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분명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십자가의 도’는 사탄을 향해서는 사형의 집행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는 ‘구원의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멸망 당할 자가 세상의 지혜로 비춰보니 전혀 쓸모없는 미련한 것이요, 사람만 피곤하게 만드는 도구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세상의 인본주의적인 지혜’와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을 가진 총명’으로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쥐고 있는 공중의 권세의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 11:18)의 말씀처럼 사탄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찌 사탄이 다스리고 있는 도구를 통해 그를 무너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요 19:30), 우리의 죄에 대한 그 값을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모든 권세를 이기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그 십자가 안에서’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21~24) 사탄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이성적 가치를 넘어서는 표적을 구하고 세속적인 지혜를 통해 만족을 구하는 어리석음에 놓이지 않도록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만족을 십자가 안에서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래 십자가는 ‘저주의 형틀’이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십자가의 복음’을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달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일에 대해 믿음을 요구할 때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때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표적을 구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소피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헬라인들은 믿음을 요구할 때 지혜가 중심이 된 이성적 증거를 바탕으로 그 사실을 믿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볼 때 저주와 수치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표적도 보이지 못하고 죽은 무능한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으라니 유대인들이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려 하겠습니까? 헬라인들은 어떻습니까!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지혜를 앞세운 그들이 볼 때 십자가는 비천한 죄수나 국가적인 반란 그리고 흉악한 죄를 범한 노예들에게 적용되는 저주의 사형 형틀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구원을 말하니 ‘십자가 복음’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겠습니까!
사탄은 세상 가운데 우상을 만들어내어 신에 대한 표적을 구하도록 유대인들의 사상을 만들어냈으며, 범신론적인 사상이 강한 헬라적 세계관을 가진 자들에게는 철학의 지혜와 우주관의 허구성을 통해 거짓된 신과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합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4절) 공중의 권세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꺼리고, 미련하다고 여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의 진정한 가치와 참 만족을 누리게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짜가 아니라 ‘진정한 능력’ 속에 진정한 가치와 진정한 만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 지혜’ 속에 참된 가치와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신 ‘십자가 안에서’ 사탄의 공중의 권세를 깨뜨리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참 만족을 찾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5) 썩을 세상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사탄과 짝하는 모습이 되지 않도록 십자가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그 한계가 있기에 사람의 지혜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제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앞에 놓인 피조물이 아무리 지혜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던 골고다는 (마 27:33)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산의 모습이 마치 해골 같았으며, 많은 사람이 처형을 당한 저주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곳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메고 가니 사탄이 볼 때는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은 자신의 승리를 결정짓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볼 때 예수는 저주 가운데 놓인 자였던 겁니다. 이것이 피조물들이 바라보는 한계였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십자가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고, 알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십자가 안에서’ 누리게 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광을 이 땅에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떤 미혹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십자가’를 믿음으로 굳게 부여잡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루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맛을 이 땅에서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룬 십자가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만복을 누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의 권세로 사탄의 미혹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그 영광을 이 땅에서 마음껏 누리를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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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십자가안에 속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지식으로도 속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기에 '십자가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축복이기에 오늘도 감사로 시작합니다
'십자가 안에' 속하면 '구원'이요
'사탄'에 속하면 '심판'이므로
'십자가 안에' 속한 자로 천국을 허락하신 은혜로 기쁨과 감동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미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시고
천국의 맛을 이 땅에서 누리도록 주의 자녀로 삼아주셨기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그 영광을 이 땅에서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구월과 죄사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며 십자가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이란 세상의 지식과 사람의 이해로는 터무니없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불신자들이 기독교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사기극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지식과 이해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는 사탄의 다스림을 받는 세상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을 지켜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만물의 주관자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지식과 이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의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어떤 미혹과 사탄의 다스림에 넘어가지 않도록, 십자가를 믿음으로 굳게 부여잡고 주님을 향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신나는사람님의 댓글
신나는사람 작성일
세상에 미혹되지 않고 십자가 안에서 살아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죽음,두려움 고통 근심,염려 인간의 원죄의 결론
인간의 원죄는 인간으로 죄가 되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 고통과죽음
가시덤불 길에 걷게 되었습니다.
천상의 천사 였던 사탄의 타락은 자신이 거하던
하늘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방 당하여 하늘과땅 어디에도 거처할 곳이 없게 되어 자신이 거처할 곳을 찾기위해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의
의식 세계과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이 떠난
의식 세계 공중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 사탄의 유혹을 피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지켜 사탄에게 심판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믿음,구원,신앙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