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신앙의 바른 자세 = 왕상 22장 41~5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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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화) | 왕상 22장 41~53절 | 신앙의 바른 자세 |
22: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22: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22: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22: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22: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22: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22: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22: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22: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2:5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2: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22: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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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요한 장소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신앙이 어땠는지 되물어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때는 B.C. 853년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이끌었던 희대의 우상숭배자, 자칭 바알의 전도자였던 아합이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죽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합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생명을 보존 받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생사의 갈림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앙’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과 북의 역사 가운데 특히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배반의 역사’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북이스라엘의 ‘배반의 역사’는 마치 고장 난 열차와도 같은 모습으로 역사 속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여호와 보시에 정직해야 합니다. 남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인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인 아하시야 두 사람의 비교 관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어떤 바른 신앙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을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요?
(41~44) 타협하는 신앙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언약적인 신앙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 신앙관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언약적 신앙은 인본적인 계획과 폭력적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적 신앙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워지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B.C. 871년 경입니다. 35세의 여호사밧이 남유다의 제4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수바였고, 그의 외할아버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무인(武人) 출신의 실히였습니다. 유혈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는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남유다는 왕위의 계승은 (삼하 7:16)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유다지파의 혈통 가운데서도 오직! 다윗의 가문만으로 왕위의 정통성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윗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였으며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한 아버지 아사 왕의 신앙을 계승한 자였습니다. (대하 17:7~9)에 의하면 여호사밧은 ‘방백들’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르치게 합니다. 그리고 국고성을 건축하고 대군을 형성하여 국방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대하 19:4~11)에 의하면 말씀에 입각한 개혁을 통하여 ‘재판제도’의 조직을 재정비한, 시대에 보기 드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또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군사동맹’을 그리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는 ‘상업동맹’을 맺는 실책을 범하게 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오점은 ‘산당’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43절)
산당 문제에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여호사밧은 자신의 며느리를 맞이할 때도 이런 모습이 작용합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 사이에 태어난 아달랴를 자신의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이것이 훗날 남유다를 불신앙과 피로 물들게 할 줄 그도 몰랐을 것입니다. 신앙을 말할 때 ‘아흔아홉 가지’를 잘하고 ‘한 가지’를 잘못하면 99% 성공한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0.1%의 작은 금 하나가 99.9%의 든든한 신앙의 담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자세는 타협하는 신앙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관점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5~50) 신앙은 실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람과 전쟁에 대한 미가야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리를 취하기 위해 아합에게 동조하며 아람과의 전쟁에 참여합니다. 결과는 시드기야를 비롯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과는 달리 승리는 고사하고 죽을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생명을 건집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B.C. 853년입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유다를 침공해 옵니다.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금식을 선포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도록 왕명을 내립니다. 이때 남유다는 모두 한마음과 한뜻이었습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들의 연합군을 신앙으로 맞선 남유다의 군대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호사밧의 신앙에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들어왔으며 우상의 이방 나라들을 하나둘 친숙한 관계의 설정을 맺는 동맹관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솔로몬의 말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자인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와의 교제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아하시야는 에시온게벨을 통한 상업동맹으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여호사밧은 아하시야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49절) 그는 실리를 쫓다가 여호와를 향한 신앙을 놓쳐버린 아합의 사건을 돌아봤던 겁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실리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51~53)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의 정통성으로 세워지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여러 험난한 굴곡의 여정을 통해 그의 신앙이 여호와를 향하는 모습이었다면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그의 아들 아하시야는 여호와를 향해 악행 하는 모습이 극에 이릅니다.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으로 나라를 다스린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진 사고로 지병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남짓 왕 노릇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마감합니다. 그는 여호와에 관한 신앙을 배우고, 보고 자란 자가 아닙니다. 바알의 정통성 속에서 나고, 성장한 자였습니다. 그러니 바알을 예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으며, 바알은 주인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2년 남짓 왕으로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남긴 흔적은 나라를 완전히 악의 도가니로 인도하는 길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에 의하여 태어난 ‘씨’는 한결같이 사탄의 ‘전사(戰士)’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53절) 신앙의 바른 유산은 세상의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보물입니다. 신앙의 바른 교훈 속에서 자라지 못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향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가련한 인생길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인류를 향해 한 명의 히틀러와 같은 자를 만들어내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정통성으로 자녀를 길러내는 신앙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 제일주의와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와 세상 중심적이고, 우상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의 삶은 맺혀지는 열매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 ‘영생’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세상 중심, 우상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불못’에 던짐을 당하는 ‘멸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이 어디를 향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핵심 요소입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 이것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꾸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과 바꿔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향한 신앙은 ‘영생’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오직 ‘영생’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이렇게 귀한 여호와를 향한 신앙을 이 땅에서 얻을 실리적인 이익과 바꿔치기 하는 자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자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그리고 우리의 가정이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정통성 위에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바른 신앙관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종말이 끝을 알리는 단추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시작의 버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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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오늘의 믿음이 굳세고 견고하고 무너지지 않고 확실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오늘의 믿음이 내일의 믿음이 될 수 없기에
날마다 여호와를 향한 믿음이 변치 않도록
나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사밧이 산당을 없애지 않고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여
아달랴는 하나님보시기에 악행을 저지릅니다
여호사밧의 신앙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의 울타리를 철저히 세우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 제일주의와 하나님 중심주의의 신앙이 되어
오늘의 삶도 말씀위에 굳건하게 서서 승리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타락이 극치를 달리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나의 모습은 그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여호와를 향한 바른 신앙관으로 세워지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