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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자 = 왕상 22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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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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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21~6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자

 

22: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2: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22: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22: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22: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22: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도입)

때는 아람 왕 벤하닷을 살려준 지 3년이 되던 해입니다. B.C. 853년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벤하닷에 대해 마음이 극도로 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체결한 아벡조약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과거 자신들이 약탈한 이스라엘의 모든 땅을 되돌려주는 것이며,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에 이스라엘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특별 상가단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벤하닷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계속해서 날짜를 연기합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계속적으로 날짜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군사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합은 벤하닷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아람과 두 차례 전투를 경험했던 아합은 아람 군대를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과 사돈 관계를 맺었던 남유다 왕인 여호사밧에게 연합을 요청합니다. 아합의 집요한 요청 앞에 서게 된 여호사밧이 볼 때 아합의 요청은 분명히 명분이 있는 전투였습니다. 왜냐하면 옛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위한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합의 속 마음은 언약의 땅에 대한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자존심 회복과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전투였습니다. 주위에서 아합과 같은 자가 실리와 명분을 내세워 나에게 접근한다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1~4) 인본적인 실리와 명분에 이끌려 부화뇌동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합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과거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지 않던 벤하닷을 군사력을 앞세워 멸할 것을 계획합니다. 아합은 이 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만듭니다. 벤하닷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이 전쟁은 일어났다는 것을 그는 국외적으로 표명합니다. 그리고 길르앗 라못은 과거 이스라엘의 땅이었던 점을 명시하며 온 이스라엘이 함께해야 할 열두지파의 전쟁임을 선포합니다. ‘열두지파의 한 일원이요, 자신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던 남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을 이 전쟁에 청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 아달랴를 자신의 아들 요람과 혼인을 시킵니다. 아합과 혼인동맹관계를 맺은 남유다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떠나 자신의 실리와 명분만을 앞세운 모습입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이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분을 두 가지로 축약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다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남과 북은 혼인동맹을 맺은 국가로서 서로가 하나가 되어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과거와는 달리 연악한 군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여호사밧은 이 전쟁에 대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올 전리품을 계산합니다. 아합은 아합대로, 여호사밧은 여호사밧대로 각자의 실리와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아가기 위해 명분을 만들어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을 쫓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실리와 명분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녹아드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자신의 명문과 실리를 구하기 전에 여기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합은 자신의 명분과 실리를 실행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변과 상황을 100% 이용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는 아합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길르앗 라못의 수복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 합한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를 아합에게 권합니다. 최후의 결정을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합니다.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5) 여호사밧의 메시지는 아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자가 되어라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명분과 실리를 계산하여 또 다른 죄악의 길에 들어서는 자가 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아람과의 전투는 남과 북의 전투력을 합치게 된다면 승률은 100%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실리를 계산하기 전에 여호사밧의 입을 통해 왜! 아람의 벤하닷이 길르앗 라못을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는지 그 근본을 먼저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 첫 출발은 하나님을 모독한 벤하닷을 엄중히 처단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부터 이뤄진 결과물이었습니다. 종교와 실리의 이원화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를 앞세운 전쟁보다 더 중요합니다. 돌이켜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실리를 위해 움직이지는 않습니까? 그 실리에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합리화시키려 하지는 않습니까? 넘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구미에 맞추어 도배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에 대한 승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여호사밧을 동맹군으로 부른 아합은 여호사밧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는 여호사밧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선지자를 400명이나 모읍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6) 400명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6) 권력의 시녀가 되어 왕이 요구하는 대로 말하는 어용 관변 선지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들은 아합의 밥상에 아주 잘 맞는, 구미가 당기는 승리의 예언을 쏟아 냅니다. 그들은 아합으로부터 을 받아먹는 자들이었습니다.

어용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경배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꿀과 송이로 배를 채워줄 자의 구미에 맞추어 예배하고, 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권력을 비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왜곡되게 전하는 자들은 (20:7)(22:18, 19)의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른풀과 같이 능력이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영원히 그리고 언제나 시들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능력의 열매를 맺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구미에 맞추어 도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지와 자신의 처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만들어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실리와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진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건물과 교인들의 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살아있을 때 교회는 진정으로 교회다워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악한 시대는 온갖 거짓된 것들로 포장되고, 위장되고, 들을 때는 즐겁고, 유익한 것들이 많지만 영을 죽이는 독물의 말씀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찔림과 아픔은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생수의 말씀을 증거하는 진리의 증거막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에 두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최우선에 두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켜 살아있는 능력의 교회요, 성도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산 열매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자신의 이익과 실리를 추구하는 아합
여호사밧도 실리와 명분을 따지지만
아합에게 최후의 결정을 하나님께 뜻을 구하도록 하였지만
아합은 끝까지 자신을 위한 방법대로 어용 선지자들에게 묻습니다
어떠한 일을 할지라도 나의 계산적인 방법으로
나의 이익과 명분과 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그 뜻을 묻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악한 이 시대는 온갖 거짓과 위선과 불의등으로 포장되어
세상적인 것들은 즐겁고 화려하지만
영적으로 병들어가게 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나의 모습도 때로는 내 방법대로 계산할때가 있었음을 고백하며
나의 삶의 모든 방향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으로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놓일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악한 이 시대에 나의 살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알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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