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하나님을 알고 계시나요 = 왕상 18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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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목) | 왕상 18장 1~6절 | 하나님을 알고 계시나요 |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18: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18: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18: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18: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
(도입)
아합과 가뭄으로부터 3년이 넘게 보호를 받아오면서 은둔생활을 해오던 엘리야가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8장은 엘리야의 등장에 대해 크게 4단원으로 나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단원은 아합의 궁내 대신으로 있던 오바댜와 엘리야와의 극적인 만남이며, 두 번째는 아합과 엘리야의 만남, 그리고 세 번째는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만남, 네 번째는 엘리야와 가뭄의 종결 편을 다루고 있습니다.
3년이 넘도록 계속된 가뭄은 백성들의 민심을 극도로 흉흉하게 만듭니다. 비를 공급하고 풍요로운 생산을 주장한다던 바알과 아세라 신의 문제는 곧바로 아합 왕의 통치와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아합에게 있어서 가뭄의 문제는 그의 통치 기반을 통째로 흔들어놓는 중대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가뭄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징계임을 알고도 사람의 능력으로 물길을 찾으려고 혈안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눈을 밝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뭄 사건을 통해 자신을 이스라엘 가운데, 우리를 향해 어떻게 조명하고 계실까요?
(1~2) 하나님은 연단이라는 과정을 통해 불신앙 가운데 놓인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고 있는 자는 그를 더 큰 사명의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훈련 시키는 과정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아합을 향해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바알의 무능성을 가뭄을 통해 증명시킵니다. 3년이란 가뭄의 기간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바알이 얼마나 무능한지 증명하기에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는 그를 더욱 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하게 훈련한 기간이었습니다. 때가 됨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에게 자신을 보이도록 명합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1절) 엘리야가 자신의 모습을 아합에게 보이려 할 때 북이스라엘은 수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극심한 기근이 임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1절) 하나님께서는 참된 풍요를 허락하는 신은 바알과 같은 ‘거짓된 신’이 아니라 ‘참 신’이신 하나님 자신임을 비를 내려 밝힐 것을 천명합니다.
가뭄은 우상의 무능성을 드러내는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은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더욱 큰 사명의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직접 훈련 시키신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참된 풍요와 행복의 근원이 되심을 깨닫게 합니다. 엘리야는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같이 동일한 3년의 연단 과정을 보낼지라도 아합과 같이 우상에 뒤덮인 미련한 자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어떤 실수도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전체적인 환경으로 일어나고 있는 연단이 있다면 그것은 두 방향을 향한 하나님의 연답입니다. 하나는 더러운 것을 걸러내는 심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더 큰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허락한 훈련 기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4) 하나님은 비록 고통의 땅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복음의 씨를 남겨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년이 넘는 가뭄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지 못하던 아합은 물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한 사람을 부릅니다. 그는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의 최측근에서 고위직의 관리를 맡고 있었던 오바댜였습니다. 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3절) 우상의 숭배자요, 우상의 전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그 나라에, 그것도 그들의 최측근에게 여호와를 대단히 열성적으로 섬기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아합과 이세벨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 명의 선지자를 건져냅니다. 자신이 구한 선지자를 ‘5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2,000여 개의 석회굴들이 있는 갈멜산 주변 산에 은둔시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두 눈을 시퍼렇게 하고 있던 왕궁에 최측근으로 있었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50명씩, 두 무리를 이루어 갈멜산 주변에 숨겨두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다는 것은 ‘절대로 보안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분명히 자신의 종들을 시켜서 이런 일들을 했을 터인데 어떻게 보안을 유지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00명이 먹고 마실 분량이라 하면 그 당시 가뭄과 기근 상태에서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선지자들이 있는 곳까지 들키지 않고 운반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나 가능했습니다. 해답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향한 신앙회복을 위하여 ‘씨’를 남겨두셨습니다. 비록 고통의 땅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복음의 씨를 남겨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6) 세속의 권력자들은 역경이 임할 때 자기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만물을 주관하신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당면하고 있는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아합은 다급해졌습니다. 이대로 바알만 믿고 있다가는 죽음에 이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통치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함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오바댜에게 명령합니다.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5절) 아합의 행동은 자신 또한 비의 근원이 된다는 바알 신을 이제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아합이 오바댜에게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백성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물의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과 노새의 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 이 시기를 틈타 반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자는 없는지 정세의 확인도 겸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일으킨 일은 전 우주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참된 회개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 문제의 근원적인 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아합ㅊ럼 세속에 속한 자들은 역경이 임할 때 자기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답이 없습니다. 문제의 근원적인 것에 대해 내가 판단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가데스의 므리바 사건에 대해 스스로 판단자가 되어 결국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잊지맙시다. 만물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당면하고 있는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을 참된 풍요와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으로 믿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언약백성의 왕이 되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문제해결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서도 ‘남겨 둔 씨’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쫓아가는 아합과 같이 ‘버려진 자’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가뭄과 같은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남은 자’입니다. 이 시대에 남아있는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시대에 남아있는 자는 힘과 권력과 교세를 등에 업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양식으로 준비되어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꼴의 양식을 먹고 계십니까? 아니면 세상의 권력과 세력을 먹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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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엘리야에게는 3년이라는 시간의 인내와 연단의 시간이었다면
아합은 3년의 가뭄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않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아합의 측근에 하나님의 사람 오바댜는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자로 선지자 100명을 구해내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없는 일들이지만
하나님은 때에 따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환경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안에서는 평안이 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절망가운데서도 소망이 있게하시는 하나님
남겨 둔 씨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풍요와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신 것을 알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꼴의 양식을 먹는
영육간에 풍요로운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환경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남겨 두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망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다니엘쌤 작성일
하나님은 연단을 통하여 우리들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시고 신앙을 세우시는 주관자이십니다.
만물이 주님의 발 아래에 있고 ,그 아래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단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에게는 참신이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그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시며 신앙을 단단히 세워나갈 그릇이 되게 하십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연단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산 넘어 산'인 것 같아 요리조리 피해보려고 요령을 피웠던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교회만 힘든 사역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다른 교회로 옮기면 좀 더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해야하는 직분이라면, 이 직분은 힘든 일이니 조금 더 편하고 내가 하기 좋은 다른 직분으로 선택했던 일들도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오바댜와 같은 이들을 통하여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실때에 우리를 동참시켜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며, 지금의 제 신앙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참 중요함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의 연단이 닥칠때 겁내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내는 순종의 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